강론 말씀 (가나다순)/차동엽 신부님

예수님의 온유

김레지나 2010. 7. 29. 18:29

차동엽 신부님의 책 <행복선언> 중에서 p.76

예수님의 온유

 

예수님 당신 자신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는 특히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온유였다. 곧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는 온유, 자신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먼제 내세우는 온유였다. 이런 예수님의 온유는 예루살렘 입성 때 희화적으로 절정에 달한다.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마태 21.5)

 이 모습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모습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당시 로마군에 대항하던 독립운동가 열혈당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기대를 많이 했었다. 이들은 당당하고 힘 있게 진군하면서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초라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온유, 곧 비폭력의 상징이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 실망한 열혈당원들은 한목소리가 되어 외쳤다.

 "예수는 우리가 기다리던 분이 아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하지만 예수님은 온유로써 십자가를 지셨다. 끝까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면서 고통을 감내하셨던 것이다.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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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신을 성찰하건대 내 뜻은 생각이 짧고 나는 능력도 시원찮다. 그런데 온유를 통하여 내 안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엄청난 지혜와 능력도 흐르게 된다. 신비 그 자체다.

 

 또한 평화를 얻으려면 온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평화를 얻는 비결로 온유를 제시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29)

 우리는 대부분 분주하고 힘들고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산다. 고생하고 수고하며 산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너희가 내 멍에를 메고 내 온유를 배우면 평안해질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명처방이다. 고생과 짐 대신에 '멍에'를 메라고 하셨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고생'과 '무거운 짐', 여기에 대비가 되는 것이 '멍에'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온유와 겸손'이다. 그러니까 '고생'과 '무거운 짐'은 온유하지 않은 사람 곧 '내 뜻'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반면에, '멍에'는 스스로 지지 못한다. 누군가가 올려놓난다. 지워준다. 그렇기 때문에 '멍에'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아버지  뜻'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멍에를 지는 것은 바로 '온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난리법석을 떨고 내팽개친다. 온유가 바로 열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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