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목자의 겸손 - 베드로를 겸손하도록 이끄신 예수님

김레지나 2010. 5. 1. 18:26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제 4 주일 ; 목자의 겸손

 

 

 

요즘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참 바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자매님에게서 전화가 여러 번 왔었습니다. 저는 일부러는 아니지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았기 때문에 다시 전화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 성주간 때 또 전화가 와서는 며칠간만 성지순례단과 함께 다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정도면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생각하고 승낙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의 아씨시, 천주강생의 장소인 나자렛 성모님 집이 있는 로렛또, 유일한 성체,성혈 기적을 볼 수 있는 예수님을 찌른 론지누스의 고향인 란치아노, 또 오상의 비오 성인이 계신 상 죠반니 로똔도, 그리고 서방 수도회의 기원인 베네딕도와 스콜라스티카 성녀가 계신 몬떼 카시노, 그리고 교황님이 계신 로마를 순례하였습니다.

모두 연세가 있으신 자매님들이었는데 미사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고 많은 감동을 받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신자들을 만나서 목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보람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탄생이란 이렇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그것도 모자라 저승까지 내려가시는 것은 자신을 버리고 낮추시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통해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제가 겸손해지면 새로운 생명들이 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맡겨주시고 태어나게 해 주신 이 새로운 생명들을 다시 아버지께 데려가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당신의 목소리를 따르는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아버지께로 이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은 사실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것이지만 실제로는 목자의 겸손으로 새로 태어난 영혼들을 의미합니다. 영혼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지만 세례는 이 세상의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해산의 고통으로 아직도 수많은 영혼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지순례를 감동적으로 마친 순례자들은 주일날 떠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일날 떠나야 하는 비행기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일랜드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그 화산먼지 구름 때문에 유럽의 대부분의 공항이 폐쇄된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그 동안의 감동으로 인내심 있게 기다리기로 하였고 저는 그들을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저도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함께 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그들을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십니다. 그리고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그 양들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크시고’, 또 당신과 아버지는 ‘하나’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양들을 잃지 않으시는 이유는 아버지를 당신보다 크게 여기시고 그렇게 순종하심으로써 아버지와 일치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오셨던 분들도 하느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양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을 나름대로 잘 교육시킨 다음에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내드려야 하는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아버지 사이에는 그 관계를 단절하는 구름이 가로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구름은 바로 아버지를 크게 여기지 못하는 저의 교만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크게 여기는 교만이 바로 하느님과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 교만으로 하느님과 단절되게 된다면 누구도 올바로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지켜낼 수 없고 다시 아버지께 돌려드릴 수도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교회의 첫 수장인 베드로를 끊임없이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 분의 교육은 베드로를 머리 숙이게 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첫 물고기를 많이 잡는 기적 때에는 베드로가 드디어 자신이 죄인임을 느끼고 예수님께 떠나가 주실 것을 청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물고기가 아닌 ‘사람’잡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교회의 수장이 되고 하느님나라의 열쇠를 부여받은 베드로가 교만해져서 예수님이 돌아가셔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사탄!’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교만해져서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풍랑이 일어 배가 가라앉게 생겼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깨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다에서는 자기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겸손해져서 자신 안에 있는 예수님을 깨울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예수님은 한 마디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모자랍니다. 베드로는 물위를 걷게 되기까지 겸손해졌지만 큰 바람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는 겁을 집어먹고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하게 된다는 것은 교만해져서 하느님이 아닌 자신을 믿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을 믿게 되어서 선악과를 따먹고 그렇게 죄가 시작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드디어 스스로 완전해 진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다 주님을 떠나도 자신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지킬 것을 장담합니다. 그러나 유다가 한 번 배반한 그 밤에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이 있은 후 닭소리만 들으면 눈물을 흘려서 눈물 골이 얼굴에 파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겸손해 졌을 때, 예수님은 당신의 양떼를 베드로에게 맡기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당신의 양떼를 잘 돌보지 않을 텐데, 사랑은 곧 낮아짐이기 때문에 자신의 양들을 맡길 베드로를 완전하게 겸손하게 만들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구약에선 처음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울에게 맡기셨습니다. 사울은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교만해져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아말렉 족속과 짐승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애라고 하셨지만 사울은 가치 없는 것들만 죽이고 왕과 좋은 짐승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이에 하느님의 분노가 일고 그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빼앗아 다윗에게 넘깁니다.

사실 다윗은 훌륭한 임금이었지만 그 역시 교만하였습니다. 만군의 야훼께서 그의 모든 전쟁을 승리하게 해 주셨지만 그는 호적조사를 통해서 자신의 군사 숫자를 알려고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백성을 이끌어보겠다는 교만입니다.

게다가 그는 음란하게 되기까지 하여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죄를 짓고 맙니다. 죄는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낳았던 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나라를 빼앗기는 신세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백성은 솔로몬의 손에 넘어갑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있었지만 사실 그 지혜 때문에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백성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수많은 공주들과 혼인을 하고 그 이방 공주들이 가져온 이방 신에게 예배까지 드렸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함을 넘어서서 재물에도 집착하여 드디어 나라가 갈라지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죽고 맙니다. 그의 아들 때에 반란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바로 세금을 많이 걷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교만은 음란을 낳고 음란은 재물 욕을 낳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인데, 검사는 매우 높은 위치이고 그래서 남을 판단하며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들이 교만해지면 접대를 받고 돈을 받는 등 타락의 길로 저절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공정해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교회를 탄생하게 했고 그 교회를 순종을 통한 아버지와의 일치로 한 영혼도 잃지 않고 아버지 손에 바치셨습니다.

오늘은 착한목자 주일이고 성소주일입니다. 단 하나만 알면 될 것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만이 많은 영혼을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고 그 영혼들을 잃지 않고 아버지께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