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토요일 - 영과 육과 성체
오늘 복음에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거든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그분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마저 “말씀이 이렇게 어려워서야!”하며 그분을 떠나서 다시는 따라다니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면 그것을 이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마지막 남은 사도들에게도 당신을 떠날 것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당신이 생명을 주는 말씀을 지니고 계신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라며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을 대표해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바로 베드로를 반석으로 세운 교회를 나타냅니다. 베드로를 기초로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오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바로 가톨릭교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이 세우시는 교회와 성사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떨어져나갈 많은 형제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 아우구스띠노회 수사 신부였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하는 일뿐만 아니라 성체성사도 고해성사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머리로는 교회가 하고 있는 이런 것들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버리고 합리적인 것들만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그리스도를 따르던 제자들이 당신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분을 더 이상 따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마 개신교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성경말씀을 읽는 것이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런 의미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그것을 다시 설명해 주시며 당신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이해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말씀하신 그대로가 진리이기에,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것 외에 다르게 말씀하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때에 당신의 살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사도들 앞에서 변화시켜주시고 당신을 기억하여 이 예식을 행하도록 분부하셨습니다. 이에 교회는 사도들의 이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나 사도들 또한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실 때 이것을 완전히 이해해서 남아있겠다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도 사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이성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해가 된다면 더 이상 믿음은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믿지도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하는 말은 영이고 생명이다.”
개신교의 유명한 목사님들이 목회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이면 많은 경우에 주님의 말씀을 잘 따르면 이 세상에서도 많은 복을 받고 부자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주님의 말씀을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으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사시고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물질적으로 잘 살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면 영적인 말씀이 이해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베싸이다라는 동네에서 한 장님을 치유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치유를 해 주었더니 사람이 나무처럼 보인다고 하고 두 번째 치유를 하니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나무로 보는 것은 영적인 눈을 띄어주신 것입니다. 그 장님을 다시 베싸이다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다시 죄를 지어 영적인 눈을 잃게 될까봐 그런 것입니다.
육체적인 눈으로 보면 사람은 그냥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사람이 나무로 보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당신의 몸을 먹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이 생명나무임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인 눈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하는 많은 것들이 이해가 안 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초대 교회 때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몰래 사람을 잡아먹는 예식을 한다는 소문까지 들어가면서 이 예식을 행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성체를 바라보는 마지막 눈이 바로 영적인 눈이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란치아노의 성체 성혈 기적을 조사하던 과학자는 처음에 그것이 그리스도의 피이고 살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 이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몇 시간만 지나도 피가 응고되어 분석이 불가능해짐에도 바로 흘린 피처럼, 바로 심장에서 잘라낸 살처럼 유지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진정 사람의 살과 피임을 보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하며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 무조건 포기하고 나간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 첫 교황께서 하신 말씀처럼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당신께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을 지니고 계시니 우리는 당신 안에, 즉 교회 안에 머물겠습니다.”라고 항상 고백해야겠습니다.
짧은 묵상
이태리의 유명한 성체기적이 일어난 곳은 란치아노와 볼쎄노입니다. 두 곳 다 신부님들이 미사를 하다가 ‘밀떡이 정말 예수님의 피가 되고, 포도주가 정말 예수님의 몸이 될까?’ 의심을 품었기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의심이 비록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부터 시작하여 아주 길게 성체성혈의 신비에 대해 설명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다 들은 군중들은 ‘말씀을 듣기가 거북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라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를 머리로 하는 ‘열두 제자’들은 바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때 베드로가 나서서 교회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베드로가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을 때처럼 ‘베드로’가 ‘대표’로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래서 시몬 베드로의 이름을 꼭 써 넣어야 했던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물론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이해했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교회는 성체의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베드로가 완전한 성모님의 믿음에 참여하는 것처럼 우리도 교회 안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참여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성찬의 신비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많은 이들이 당신을 떠나갈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정말 많은 이들이 마리아를 등지고 성체를 등짐으로써 결국 매 순간 육화되시는 그리스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떠나간다고 하여 교회는 이 신약의 ‘한 몸이 되는 핵심 신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이 바로 교회의 불완전한 믿음이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는 마리아의 믿음을 통해 이 완전한 육화의 신비가 재현되고 있음을 들었습니다. 또한 오늘 마지막 복음은 바로 마리아를 포함하는 가톨릭교회만이 끝까지 이 성찬의 신비 안에서 머물 것임을 예언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로 시작하여 교회로 끝맺는 성찬의 신비는 가톨릭 믿음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신비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바로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모인 사람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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