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수요일 - 이미 이루어진 심판
마더 데레사가 젊으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어느 빈민굴을 방문했습니다. 한 청년을 만났는데 씻지도 않고 방도 청소하지 않아 돼지우리 저리가라 할 만한 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방엔 램프가 있었지만 그 청년은 그 램프를 키지 않았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램프가 있는데 왜 키지 않느냐며 그 램프를 켰습니다. 그 청년은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냐며 화를 내고 다시 램프를 껐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지지 않고 다시 램프를 켰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마침내 화가 난 청년은 램프를 밖으로 내던져 깨 버렸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집으로 돌아가 새 램프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방에 불을 밝혀주고 돌아갔습니다.
10년 정도가 지나 우연찮게 그 청년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같은 빈민굴에 살고 있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알려주는 수녀에게 데레사 수녀를 보면 이렇게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키 작은 수녀님께 전해 주시오. 당신의 등불이 지금도 내 생활 속에 불타고 있다고 (Your light is still burning in my life)”
빛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을 보기 싫어서입니다. 이는 범죄가 어두운 곳이나 외진 곳에서 많이 벌어지는 이유와 같습니다. 남이 본다고 생각되면 좀처럼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죄인일수록 남들의 시선이 따갑기만 합니다. 저도 괜히 불량배를 쳐다봤다가 맞을 뻔 한 적도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의 시선도 견디지 못합니다.
반대로 위의 이야기처럼 빛은 자신을 보게 해 주고 자신을 보면 그런 추한 모습으로 계속 사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우울증 치료 방법 중 하나는 밝은 빛 속에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아빌라의 데레사를 데리고 지옥엘 가셨습니다. 그 분은 데레사에게 어느 작은 방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방은 매우 작았고 빛이 없어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벌레들이 있는 것 같았고 그 축축한 공기 속에도 온몸을 전율케 하는 기분 나쁜 것들이 느껴졌습니다.
데레사는 이 방이 누구의 방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방이 내가 너를 구원하지 않았으면 네가 영원히 있었어야 할 방이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운명을 지닙니다. 성녀가 된 분에게 그러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면 우리에겐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 공간이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엔 이렇게 우리 모두가 심판 받은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어둠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경향이 원죄입니다.
저는 구원을 생각하면 항상 오징어잡이 배를 생각합니다. 불빛을 좋아하는 오징어는 그 빛을 따라 올라와 그물에 걸리지만 다른 고기들은 빛이 싫어 빛에서 멀리 떨어져갑니다. 내가 지금 어떤 본질의 인간인가에 따라 이미 심판은 이루어져있는 것입니다.
두 여인이 맷돌질을 하고 있다면 한 여인을 데려가고 한 여인을 남겨 둘 것이고 두 남자가 밭을 갈고 있다면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둘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 보다도 그 사람이 어떤 본질의 사람이냐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심판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하느님께서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빛을 좋아하는 사람과 빛을 싫어하는 사람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 사람들의 행실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유일한 계명을 주고 가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빛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어둠을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해 빛의 진리를 끝까지 따를 것을 결심해야겠습니다.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짧은 묵상>>
우리는 보통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죄인이기 때문에 짓는 것입니다. 즉, 죄는 이미 있는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인이었기에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은 것입니다.
가리옷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때 죄인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가 죄인이었기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입니다.
따라서 한 순간에 성인이 죄인이 되는 일도 없고 죄인이 성인이 되는 일도 없습니다. 사람이 한 발짝만으로 산을 오르고 내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와는 자신의 시선을 하느님에게서부터 유혹자에게 돌릴 때부터 이미 죄인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 또한 하느님을 보지 않고 하와와 그가 건네주는 빛깔 좋은 열매를 쳐다보면서부터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모든 죄는 하느님으로부터 아주 조금씩 멀어지면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특별한 죄를 짓기 전에 진정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야합니다. 둑방이 작은 구멍으로 허물어질 수 있듯이 큰 죄도 이런 작은 죄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순간도 그 분을 잊지 않고, 단 한 순간도 그 분이 원하시지 않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항상 시선을 그분에게 두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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