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편지

비참한 존재임을 깨닫는 기쁨

김레지나 2009. 4. 10. 20:26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00님.

안녕하시지요?

저는 두 주 쯤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어요. (수욜날부터 괜찮여요..걱정마셈...)

푹 자고 일어나도 전혀 피로가 풀리지 않고, 얼굴은 퉁퉁 붓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더만요.

해서 “직장을 그만두어야하는데 괜히 다니고 있는 건 아닌가? 뼛속까지 아리는 게 전이라도 된 걸까? 재발하면 어쩌나?” 심각하게 고민되었지요.

“내일 일을 예측할 수 없으니 이사를 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불편한대로 살아야하나?, 시댁식구들이 아프면 어쩌나? 그 수발은 누가 하지?...애들은?.... 남편은??..... .” 제가 짊어져야할 별별 짐스런 일들을 우울하게 되새겼지요.


 사순시기에 미사참례도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했구요. 몸이 힘드니까 점심시간에 하는 기도모임에도 가기 싫더만요. 다른 사람들한테 하느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라고 하다가도 이내 돌아서면 곧 시무룩해졌지요. 철없이 하느님 사랑에 취해서 헤죽헤죽 까불던 때가 까마득한 옛 일로만 느껴지고, 제 부족함과 비참함만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그 때는 내가 괜히 그랬구나.......내가 잘 지내는 건 순전히 많은 이들의 기도덕분인데...자랑할 것도 없는데...다른 사람이 부족하다면 화낼 일이 아니라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내 할일만 하면 되는데...내가 너무 교만했구나.....내가 성령을 박해했구나.....내가 더 부족하구나.....게으르기 짝이 없고..가족들에게조차 잘하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것도 전혀 내 능력이 아닌 것을...이젠 하느님께서 나한테 화내고 계실거야...믿음도 부족하고... 말만 앞서고...이젠 하느님을 그리워할 자격도 없지......”


월요일에 어떤 자매님이 제게 패션오브크라이스트를 편집한 동영상을 보내주었어요. 저는 그 영화를 겁나서 아직 본 적이 없어요. 동영상 시작부분에서 베드로가 군중에 싸여 예수님을 배반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 순간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고통이 두려워서 예수님께 받은 모든 은총과 자신의 맹세를 저버린 베드로의 모습이 딱 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눈물이 와락 쏟아졌어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제 부족함과 비참함만을 보더라도, 제가 처한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잊으면 안되는 거였어요. “한 때는 평생을 예수님 사랑 전하면서 씩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과분한 은총을 받는 내가 기쁨을 잃어버리다니....내가 지금 예수님을 모른다 배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우연히 마더데레사의 편지를 읽었어요. 위로를 얻었지요.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참으로 비참한 존재입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는데, 이상하게 그런 고백이 제게 즐거움을 주었어요. 하느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어제, 성목요일에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바쳤어요. 전에는 그냥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했었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을 아프게 한 제 부족함이 절절히 느껴져서 죄송스럽기만 했지요. 그 괴로움의 맛은 뭐랄까...제 자신과 하느님에 대해 더 잘 깨닫게 되었다는 기쁨이 섞인 괴로움이었어요. 제 죄를 돌아볼수록 예수님은 저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유난히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기쁨은 은은하게 바랜 것 같지만, 하느님께로부터  전보다 더 멀어진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느님께서 제 안에 계시지 않으면 하느님 앞에서 한없이 비참한 제 모습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하느님을 그리워하지도 않았을 테지요. 하느님은 제 곁을 결코 떠나지 않으셨고, 떠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런 깨달음 덕에 괴롭기만 하던 마음이 나았나 봐요. 


(남편이 또 아프다네요. 제가 일어날만하면 꼭 아파요. 성금요일 전례에 못가겠어요. 피곤하기도하고.....직장에서 지쳐 돌아왔는데 집이 엉망이면 짜증이 나지요. 그런 제 모습에 잠시 실망스럽지요. 금방 이렇게 넘어지고, 금방 이렇게 이기적으로 되고....ㅎㅎ... 묵상만 울먹이면서 하믄 뭐하냐구요.... 한심한 레지나예요. 온유한 마음을 갖고 싶은데....“에고 하느님, 저는 참으로 비참한 인간입니다.”)

갈 길은 넘 멀고 저는 여전히 형편없이 부족해서 맨날 맨날 넘어지고... 그래도 제가 어찌 어찌 다시 명랑해진 것을 축하해주셈.. ㅋㅋㅋ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도 큰 은총받은 거 아닌감요? (또 자뻑으로 끝나네여....~~ ㅋ갈 길이 멀죠?)


제가 사랑해야할 예수님은 00님 안에도 숨어 계시지요.

숨어 계셔도 이젠 좀 더 잘 보여요. (까꿍~~해야지.. ㅎ)


부활 축하해요.

언제나 기도 중에 기억해요.

하느님의 마음에 쏘옥 드는 이 되시기를...... 

                          부족한 주제에 대책없이 행복한 레지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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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 p329


마더 데레사가 신부님께 드린 편지


신부님, 로레토에서 저는 행복했습니다. 저는 가장 행복한 수녀였습니다. 그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직접 저를 부르셨고 그 목소리는 명확하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1946년에 주님께서는 계속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그 목소리가 하느님이심을 알았습니다. 두려움과 끔찍한 느낌들. 제가 속을까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순명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영적 지도 신부님께 알렸습니다. 저는 신부님께서 모두 악마의 속임수라고 말씀하시기를 내내 바랐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신부님은 저를 부르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시겠지요. 장상들은 1947년에 저를 아산솔로 보냈고, 그곳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제게 주님 자신을 온전히 주시는 듯 했습니다. 달콤함과 위안과 일치감이 넘치던 6개월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습니다.

 그 후 1948년 12월에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이 되자 수녀님들도 많아졌고 사업도 커졌습니다.

신부님, 49년이나 50년 이래로 이 끔찍한 상실감, 말할 수 없는 어둠, 외로움, 하느님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이 시작되었고, 이 모든 것은 제 마음 깊은 곳을 괴롭혔습니다. 어둠은 너무나 심해서 저는 마음으로도 이성으로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합니다. 제 영혼에 하느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비어 있습니다. 제 안에는 하느님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뿐이지만 하느님은 저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천국, 영혼, 왜 이것들은 단지 말일 뿐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요? 제 삶은 너무나 모순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영혼은 돕고 있지만 그들이 어디로 가도록 돕는 걸까요? 왜 이런 모든 일이 생기는 걸까요? 제 존재 안에 영혼은 어디 있을까요? 하느님은 저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때로 저는 제 마음이 “저의 하느님”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괴로움과 고통을 저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에게 무척 따뜻한 사랑을 느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저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성체만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신부님, 제 삶의 모순을 아시겠지요. 저는 하느님을 간절히 바라고 그분을 무척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만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고통과 갈망밖에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에 저는 하느님께 무척 아름다운 것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죄의 고통하에 하느님께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이 약속을 계속 지켰습니다. 때로 어둠이 너무나 짙고 제가 “하느님께 거절”의 말을 할 뻔할 때면, 이 약속이 저를 일으켜 세웁니다.

 저는 제 삶에서 하느님만을 원합니다. 사업은 정말로 온전히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이 저에게 요청하셨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해주셨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모두 하느님이 인도하시며 제가 할 행동을 모두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할 말을 알려주시고 제가 수녀님들을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과 제 안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상이 저를 칭찬한다 해도 그 소리는 제 영혼을, 아니 영혼의 표면조차고 건드리지 못합니다. 사업에 관한 것은 모두 하느님의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예전에 저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이야기하며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이제는 묵상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저의 하느님”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으며 때로는 그마저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어둠을 뚫고 계속 나타납니다. 밖에서 일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면 바로 제 안에 무척 가까이 살아 있는 누군가의 존재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 속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무척 자주, 심지어는 매일매일 더욱 참되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무의식 중에 예수님께 가장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는 증표를 이야기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신부님, 저는 당신께 제 마음을 열어보였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저는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에게 하느님은 “저의 아버지‘이므로 그에 합당하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수녀님들께 드리는 양식을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영성 서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저에게 무척이나 당연했습니다. 주님께서 제 삶에 완전히 들어오시기 전까지 저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말의 중심이었습니다. 신부님,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어둡고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도 저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이 저를 원하지 않으시고 저를 돌보지 않으시더라도 말입니다.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저는 그것이 무슨 뜻이 될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온 마음을 다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다만 교회에 성인들을 배출할 은총을 저에게 달라고 기도드릴 뿐이었습니다.

신부님, 수녀님들은 하느님이 제게 주신 선물입니다. 수녀님 한분 한분이 저에게는 너무나 거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보다 수녀님들을 더욱 사랑합니다. 수녀님들은 제 인생에서 무척 큰 부분입니다.

제 몸과 마음, 영혼은 하느님에게만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 사랑의 자녀인 저를 원하지 않는다며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 저는 이번 피정에서 결심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처분에 따를 것,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느님이 원하시는 만큼 저에게 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 어둠이 다른 영혼에게 빛이 된다면, 아니 그 누구에게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들판에 핀 하느님의 꽃이 되어 더없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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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가 피카키 신부에게 밝힌 내용은 중대하면서도 무척 개인적이다. 바로 사업이 시작된 이후 데레사가 줄곧 견뎌왔던 “말할 수 없는 어둠”에 대한 눈물겨운 설명, 사적서원과 껏이 그녀의 인생에 미친 영향,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과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의 회상이다.

 예수님과 마더 데레사의 관계는 정말 역설적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마더 데레사 안에서 그녀를 통해 살고 계셨지만 마더 데레사는 예수님이 존재하신다는 달콤함을 음미할 수 없었다. 마더 데레사는 기도를 드릴 때 예수님께 의지하며 예수님에 대한 고통스러운 갈망을 표현했다. 그러나 마더 데레사가 예수님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낄 때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할 때 뿐이었다. 그곳에서 마더 데레사는 예수님이 생생하게 살아계시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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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그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을 간절히 바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시련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은 하느님께 완전히 자신을 내어드리며 예수님과 하나 되어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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