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교실(구약) : 자료 - 33
기도하는 이스라엘
시편
시편은 이스라엘의 기도집이자 성가집이며 시집이다. 이 책의 제목을 히브리 성경은 ‘찬미’라는 의미를 가진 ‘테힐림’(Tehilim),그리스어 성경은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바치는 기도’라는 뜻인 ‘프살모이’(Psalmoi, 성영, 聖詠)라고 붙였다. 중국어 성경은 ‘시 모음집’ 이라는 의미로 ‘시편(詩篇)’이라고 했고, 우리말 성경도 이에 따랐다. 모두 150편이 실려 있는 시편은 다섯권으로 이루어졌고, 각 권은 영광송으로 끝맺고 있다.
- 1권 : 1-41편 (1편 ; 전체의 서론, 41,13 ; 결론의 영광송)
- 2권 : 42-72편 (72,18-19 ; 결론의 영광송 )
- 3권 : 73-89편 (89, 52 ; 결론의 영광송 )
- 4권 : 90-106편(106,48 ; 결론의 영광송)
- 5권 : 107-150편 (150편 ; 전체의 결론적인 영광송)
* 시편은 ‘응답의 성경’
시편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과 말씀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응답이 담겨 있다. 시편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찬미를 바치기도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며 자기가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따라서 시편을 ‘응답의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 시편은 하느님 백성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서 거행되는 매일의 의식 때 반드시 시편으로 기도를 올렸고, 축제일에 팔레스티나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모이는 기간에도 시편으로 기도를 올렸으며, 하느님께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같이 시편으로 기도를 올렸다.
* 시편은 전례 성가집
이스라엘은 계약의 백성이었고, 이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첫 매듭은 하느님께 대한 예배였다. 그들은 전례행사 때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시편을 노래했다. 성전 합창대나 영창자들이 노래하고, 전체 회중은 후렴을 응답했던 것 같다.
* 시편의 유형
시편은 시(詩)이며 다양한 문학적 유형을 갖고 있다. 시편들을 각각의 유형에 따라 분류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는 개연성에 의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때로는 한 시편 안에 여러 유형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그 시편을 어느 한 유형에 한정시킬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어떠한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 찬미 시편 ( 8 ;19 ;29 ; 33 ; 67 ; 95-100 ; 103-105 ; 111 ; 113-114 ; 135 ; 136 ; 145-150 등)
유일하신 절대자 하느님, 창조주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이 믿고 따르는 하느님을 기리고 찬양하는 시편들이다.
- 감사 시편 ( 18 ; 30 ; 32 ; 34 ; 40 ; 66 ; 118 ; 124 ; 129 등)
하느님의 위대함을 노래하면서 감사를 드리는 시편들이다.
- 탄원 시편 (3 ; 7 ; 10 ; 22 ; 25 ; 31 ; 38 ; 44 ; 51 ; 77 ; 88 ; 130 ; 137 ; 140 등)
박해를 받거나 죽음이나 질병 같은 심각한 고통을 받을 때 하느님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구원해 주실 것을 탄원하는 시편이다.
- 교훈 시편 (1 ; 37 ; 49 ; 73 ; 78 ; 112 ; 119 ; 128 ; 133 편 등)
교훈 시편은 지혜 시편 또는 율법 시편으로 불리는데,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율법 ․ 선과 악의 문제 등 교육적 의도를 담고 있는 시편들이다.
* 시편과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시편의 토대 위에 성장하셨다. 그분은 회당에서 시편으로 기도를 바치셨고, 대축제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시편을 노래하셨으며, 설교 때에도 시편을 인용하셨다.
* 시편과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
시편은 초기 그리스도교 때부터 개인 신심행위와 공동체 전례에 사용되었다. ‘성무일도’(聖務一禱) 또는 ‘시간전례’(時間典禮)는 거의가 시편으로 짜여 있으며, 미사 때에 사용하는 기도문들의 상당 부분이 시편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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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주제 : 이스라엘의 지혜
* 읽어야 할 성경 : 잠언, 코헬렛
* 성경 구절 쓰기 : 잠언 1,2-3 ; 1,7 ; 3,5-8 ; 9,10 ; 12,28 ; 25,15-18 ; 25,28 ; 29,25-26 ; 코헬렛 1,2 ; 2,14 ; 3,1-2 ; 7,18 ; 12,13-14
< 이하 김양진 선생님의 2008년 5월 7일 성경강의 정리입니다.>
(병원진료 때문에 시편강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정리해 온 자료를 나중에 옮긴 것이라서 중요한 부분 빠져있을 수 있습니다. 부분 부분 묶는 것도 제대로 안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읽어보시면 김양진 선생님 강의의 얼개는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희들 눈높이에 맞추어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주시는 김양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보통 촛불을 켭니다.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말이나 장미꽃 등으로 사랑을 전달하려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연일 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촛불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왜 사람들이 촛불을 켜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해결해주려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일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을 정부는 오히려 ‘좌빨’이라고 짓밟으려합니다. 지도자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이 아무리 간절하게 이야기해도 보통은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목숨이든, 자존심이 되었든, 정치 철학이 되었든, 자기들의 이익과 배치될 때는 자기 뜻만을 고집합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종교든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방법과 자세에 대해서 가슴깊이 새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천주교신자들은 기도서 없으면 기도하기 힘들어합니다. 새로 세례 받으신 분들과 식사하면서 식사 전 기도하자고 하면 “저 기도문 못 외웠는데요.”라고 합니다. 우리는 선배백성들인 이스라엘인들의 기도를 보면서 어떻게 기도하고 무엇을 기도해야하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 : 기도집, 성가집, 시집
시편은 이스라엘의 기도집이자 성가집이며 시집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히브리 성경은 ‘찬미’라는 의미를 가진 ‘테힐림’(Tehilim), 그리스어 성경은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바치는 기도’라는 뜻인 ‘프살모이’(Psalmoi, 성영, 聖詠)라고 붙였습니다. (우리도 성가를 부를 때 오르간 같은 악기와 함께 합니다. 옛날에는 오르간은 없었고, 주로 현악기에 맞추어 불렀습니다.) 중국어 성경은 ‘시 모음집’ 이라는 의미로 ‘시편(詩篇)’이라고 했고, 우리말 성경도 이에 따랐습니다.
다섯 권의 시편
모두 150편이 실려 있는 시편은 다섯 권으로 이루어졌고, 각 권은 영광송으로 끝맺고 있다.
- 1권 : 1-41편 (1편 ; 전체의 서론, 41,13 ; 결론의 영광송)
- 2권 : 42-72편 (72,18-19 ; 결론의 영광송 )
- 3권 : 73-89편 (89, 52 ; 결론의 영광송 )
- 4권 : 90-106편(106,48 ; 결론의 영광송)
- 5권 : 107-150편 (150편 ; 전체의 결론적인 영광송)
시편을 편집하는 사람이 시편 안에 이스라엘 전 역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갖고 모세오경을 본 따서 다섯 권으로 나누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시편은 '응답의 성경'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여러 면을 보고 종합해야하는 것처럼 시편도 간단히 "이것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편을 여러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편은 응답의 성경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사가 뭐냐고 물어보면 “하느님과 함께한 생활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이 이루시는 구원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듣고 실천하도록 뽑혔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 계시를 들을 귀만 뚫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입을 열지 못하는 벙어리를 선택한 게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과 대화하는 백성을 뽑으셨습니다. 대화는 서로 듣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큰 줄기로 보면, 모세 오경은 하느님께서 해주신 큰 일들에 대한 기록이고, 예언서는 하느님 말씀을 전달해주는 것이고, 시편은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말씀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응답입니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을 하느님께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일방적으로 하느님께 떼쓰는 게 아니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시편을 보면 하느님 하시는 일에 찬미도 하고, 불평도 하고, 감사도 하는 내용입니다. 시편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과 말씀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응답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찬미를 바치기도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며 자기가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편을 하느님과 대화하는 성경, 응답의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편을 읽으면 찬미할 때는 어떻게 하고 감사할 때는 어떻게 하고 탄원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편은 '하느님 백성의 기도'이다.
두 번째로, 시편은 ‘하느님 백성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보는 것, 차려진 밥... 등등 일상 생활의 모든 것들이 기도의 소재였습니다. (식사 전에 "하느님 이것을 수확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준 이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면 훌륭한 기도가 됩니다. 꼭 정해진 기도문을 읽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을 보면 역사 이야기, 지혜의 이야기...등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서, 예언서에 대한 공부가 시편 읽을 때 도움이 됩니다. 시편을 읽으면서 '이것은 출애굽 때 이야기, 이것은 바빌론 유배 때의 이야기, 이것은 다윗왕 때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편의 기도를 모든 일에 활용했습니다. 성전의식을 거행할 때도 시편으로 기도했고, 축제일에 사람들 모여서도 시편으로 기도했고, 매일 기도에 시편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이해하면 하느님 백성의 삶과 신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시편은 '전례 성가집'이다.
시편은 우리 가톨릭 성가집과 성격이 비슷합니다. 전례 때에 부르는 노래를 성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느님께 일치시켜주는 매듭이 하느님께 대한 예배였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전례를 통해서 하나의 신앙공동체로 묶이게 됩니다. (지금 우리를 공동체로 맺어주는 매듭이 주일 공동체 미사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별히 성전에서 하느님을 뵙고 현존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귀환해서 그 어려운 중에도 성전부터 건설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이 그 성전의 어좌에 앉아서 찬미를 받으시는 분이라 생각했고, 공동으로 예배드릴 때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하느님께 찬미드릴 때 쓰는 가장 좋은 형식이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찬미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전례행사 때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성전 합창대나 영창자들이 노래하고, 전체 회중은 후렴을 응답했던 것 같습니다.
머릿글 : 저자, 역사적 배경, 악기, 가락
시편을 보시면 첫머리에 머릿글이 있습니다. 후대 수집자가 정리하면서 붙여놓은 것입니다. 다윗, 솔로몬 등등의 작가 이름이 나오면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를 말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또 시편에 역사적 배경을 머릿글로 붙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3편에 [시편. 다윗. 그가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서 달아날 때]라고 적혀있습니다. 머릿글을 보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노래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과 역사를 모두 시편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역사와 율법, 지혜와 삶의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기도로 승화시켰는지 알려면 시편을 보면 됩니다.
또는 악기를 머릿글로 적기도 했습니다. 어떤 악기를 쓰면 좋은지에 대해 표시한 것입니다.
또 '암사슴 가락으로'라는 식으로 노랫가락을 적은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도 시를 지은 후 민요나 유행가에 맞추어 곡조를 붙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민요가락을 빌려와 시편과 접목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의 저자
시편은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닙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왕정시대와, 제 2성전시기에 시편이 가장 많이 저작되었습니다. 이 저작된 시편을 편집한 때는 기원전 4세기에서 2세기 사이입니다. 150편 중에 대략 72편 정도가 다윗이 저자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시편 1편부터 72편까지는 다윗작품이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 작품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전승에서는 시편을 다윗작품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시를 잘 지었고, 악기를 잘 연주했으며 이스라엘 전례의 기본을 수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전체의 정신은 다윗작품부터 확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윗이 시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기에 시편을 다윗작품이라고 할 뿐이지, 시편 모두를 다윗이 쓴 게 아닙니다. 모세 오경도 다 모세가 쓴 게 아니지만 모세에 귀속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시편의 번호
시편은 1장, 2장으로 부르지 않고 1편, 2편이라고 합니다. 9편까지는 번호가 한 개씩 붙여져 있지만, 대부분 괄호 안에 번호가 하나씩 더 있습니다. 괄호 안의 번호는 각편의 번호와 하나씩 차이가 납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 라틴어 성경에서 번호를 다르게 매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을 따왔습니다. 그래서 큰 글씨로는 히브리어 성경의 번호대로 적고, 괄호 안에는 그리스, 라틴어 성경에서 매겨진 번호를 적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전례에서는 라틴어 성경의 시편번호를 쓰기 때문에 둘 다 표기했습니다.
시편의 유형
시편은 시(詩)이며 다양한 문학적 유형을 갖고 있습니다. 시편들을 각각의 유형에 따라 분류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는 개연성에 의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때로는 한 시편 안에 여러 유형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그 시편을 어느 한 유형에 한정시킬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어떠한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학자마다 분류를 다르게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탄원시편도 감사시편이라고 나누기도 하고, 고난시편이니 메시아 시편이니 순례시편이니. 하는 식으로 수 십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다 알 필요는 없겠고, 큰 줄거리를 따져서 편리하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 찬미 시편 ( 8 ;19 ;29 ; 33 ; 67 ; 95-100 ; 103-105 ; 111 ; 113-114 ; 135 ; 136 ; 145-150 등)
유일하신 절대자 하느님, 창조주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이 믿고 따르는 하느님을 기리고 찬양하는 시편들이다.
- 감사 시편 ( 18 ; 30 ; 32 ; 34 ; 40 ; 66 ; 118 ; 124 ; 129 등)
하느님의 위대함을 노래하면서 감사를 드리는 시편들이다.
- 탄원 시편 (3 ; 7 ; 10 ; 22 ; 25 ; 31 ; 38 ; 44 ; 51 ; 77 ; 88 ; 130 ; 137 ; 140 등)
박해를 받거나 죽음이나 질병 같은 심각한 고통을 받을 때 하느님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구원해 주실 것을 탄원하는 시편이다.
- 교훈 시편 (1 ; 37 ; 49 ; 73 ; 78 ; 112 ; 119 ; 128 ; 133 편 등)
교훈 시편은 지혜 시편 또는 율법 시편으로 불리는데,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율법․ 선과 악의 문제 등 교육적 의도를 담고 있는 시편들이다.
찬미시편
위의 네 가지 유형에 속하는 시편을 한 편씩 알아보기로 합시다.
하느님께 찬미 찬양을 하는 기도를 찬미시편이라고 합니다. 이 찬미시편은 서론, 주제, 결론이 있는 틀을 갖고 있습니다. 도입부분에서는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권유합니다. 그리고 찬양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축복 또는 기도로 마칩니다.
찬미시편 중의 하나인 29편을 살펴봅시다.
도입:
“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드려라.29:2 그 이름의 영광을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 하고 주님께 경배하여라.“(시편 29,1-2)
이 부분이 도입부분입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주제:
“주님의 소리가 물 위에` 머물고 영광의 하느님께서 천둥 치시네. 주님께서 크나큰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여라. 주님의 소리가 향백나무들을 부러뜨리네. 주님께서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부러뜨리시네.---- 주님의 소리가 불꽃을 내뿜으며 주님의 소리가 사막을 뒤흔드네. 주님께서 카데스 사막을 뒤흔드시네. 주님의 소리가 암사슴들을 몸서리치게 하고 숲들을 벌거숭이로 만드니 그분 궁전에서 모두 외치네. “ 영광이여!”(시편 29,3-)
여기서 '주님의 소리'가 일곱 번 나왔습니다. '일곱 번'이라면 모든 주님의 소리를 이야기합니다. 주제는 '하느님의 목소리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는 책임이 우리한테 있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한다고 하면서 자연을 훼손하면 헛된 것입니다.)
결론:
"주님께서 큰 물 위에 좌정하셨네. 주님께서 영원하신 임금님으로 좌정하셨네.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권능을 주시리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평화로 강복하시리라.“
"하느님은 온갖 권능을 가지고 계시고, 자연을 지배하시고, 천둥번개도 칠 수 있고, 송백나무도 무너뜨릴 수 있으시다. 당신 백성들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당신 백성에게 평화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시편 3편의 결론은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시편
하느님에게 은혜입고 감사할 줄 모르면 하느님 백성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드리는 기도가 감사시편입니다.
감사시편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찬미시편처럼 먼저 하느님을 부르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 다음에는 하느님께 구원받은 체험을 이야기합니다. 민족으로 보면 구원역사에 대한 체험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체험에 대해 감사드리고 신뢰를 표현합니다. 그 다음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리자고 공동체에게 이야기합니다.
118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찬양: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 118)
이 시편은 전례 때 감사드리는 일종의 공동체 기도입니다. 선창자가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하면 공동체가 후렴을 하는 형태로 시작합니다.
구원받은 체험:
“ 곤경 속에서 내가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으로 이끄셨네. 주님께서 나를 위하시니 나는 두렵지 않네.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나는 내려다보리라. 주님께 피신함이 더 낫네, 사람을 믿기보다.“(시편 118)
우리는 고통을 겪을 때 하느님이 구원해주셨다는 개인적인 체험을 합니다. 오직 믿을 것은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개신교신자들은 간증을 잘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점잖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열정있게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 부족한 편입니다. 개신교 부흥회가면 신앙간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청중들은 "아멘 할렐루야"하고 응답합니다. 너무 지나치면 곤란하지만, 내 구원체험을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저 사람이 그런 구원 체험했으면 나도 어려운 일 있을 때 구원해주시겠구나. 하느님을 믿을만하구나. 믿으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구원체험을 전해 듣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얻게 되고, 후에 하느님께 은혜를 받고 구원받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결론:
" 내게 열어라, 정의의 문을. 그리로 들어가서 나 주님을 찬송하리라. 이것이 주님의 문이니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네. 제가 당신을 찬송하니 당신께서 제게 응답하시고 제게 구원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시편 118,19-21)
하느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셨고 은혜를 입었으니, 하느님을 믿고 따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성전에 가서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이 부분은 모든 공동체로 하여금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도록 성전 안에서 선창자가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매사에 감사하라.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성당에 다니기 전에는 우리 삶에 대해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의 생명 자체가 하느님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하느님께 감사를 표시하는 방법니다. 성당에 다녀도 돈이 생기거나 세상에서의 이익을 못 얻는다고 불평만하면 안됩니다. 부족한 대로 하느님이 돌봐주셨음을 감사드려야합니다.
탄원시편
우리들이 드리는 기도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마 탄원기도일 것입니다. 누구든 고통받고 힘들 때 가장 기도를 많이 합니다. 안전하고 평안한 상태로 되게 해주시라고, 고통을 호소하고, 그 고통을 해결해주시라고 바치는 기도가 탄원시편입니다. 탄원기도는 "그 고통을 해결해줄 이가 하느님, 당신이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당신을 찬미하고 감사드리고 따르겠습니다."라고 청하고 서약하는 기도입니다. 탄원기도에는 개인적인 탄원이 있고, 공동체의 탄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탄원시편은 22편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시편 22,2)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이 부분을 인용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예수님이 하느님을 원망하고 죽었다"라고 합니다.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시편 22,3)
무죄한 사람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면서 바치는 탄원의 기도입니다. 신앙인들은 사람들에게 당하는 어려움보다도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무서운 말이 "하느님이 너를 버리셨다."는 말입니다.(자식에게 가장 무서운 말이 "너 내 자식 아니야.","아버지가 너를 버리셨다." 는 말입니다.) 따라서 탄원시편은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로부터 시작합니다. 믿고 의지했던 하느님이 나를 버리셨다면서 하느님께 가장 큰 고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 위에 좌정하신 분. 저희 선조들은 당신을 신뢰하였습니다...... 당신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고 당신을 신뢰하여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시편 22,4-22,6)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할 때, 바빌론 포로생활 할 때 조상들을 구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나라를 잘못 만들어놓아도 용서해주시고 다시 받아들여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인간적으로 고통스럽다고 하느님께 절규하지만 하느님은 우리 조상들을 보살펴주시는 분이시기에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형편없지만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하느님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해주신 은혜가 하느님께 매달릴 수 있는 단초입니다.
" 저는 물처럼 엎질러지고 제 뼈는 다 어그러졌으며 제 마음은 밀초같이 되어 속에서 녹아내립니다. 저의 힘은 옹기 조각처럼 마르고 저의 혀는 입속에 들러붙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죽음의 흙에 앉히셨습니다."(시편 22,15-16)
하느님께 매달리다가도 하느님이 조상들에게 해주신 건 아득한 옛날 이야기인 것만 같습니다. 희망이 보이기는 하지만 저 바다가운에 희미한 등대 같습니다. 현재 상황이 너무 어려우면 장래 어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의지하기 힘듭니다. 하느님께서 빨리 건져주시기만을 바랍니다. (어린 아이가 혼자 놀다가 웅덩이에 빠집니다. 엄마가 "응 갈께"라고만 하고 빨리 안오시면 곧 죽을 것만 같아서, 엄마가 구해줄 것을 믿고 있더라도 엄마에게 불평하고 투정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불평이 나오고 투정도 부리는 것입니다. (의지할 만한 부모한테 자식들이 뭐 좀 해주라고 투정하지, 믿지 못할 부모한테는 아예 말도 안 할 것입니다.)
"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소서. 저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생명을 칼에서, 저의 목숨을 개들의 발에서 구하소서. 사자의 입에서, 들소들의 뿔에서 저를 살려 내소서." (시편 22,20-22)
웅덩이에 빠진 아이가 믿을 사람은 엄마밖에 없듯이, 믿을 분은 오직 하느님 뿐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적들을 짐승으로 곧잘 표현했습니다. 적들로부터 박해를 당하니 하느님께 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가장 암울하고 가장 고통스런 처지에서 하느님께 대한 가장 큰 믿음과 신뢰가 나옵니다. 쇠도 뜨거운 불에 달궈질 때, 대장장이한테 두들겨 맞을 때 단단해집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만 믿고 붙잡을 수 있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강해집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서 자랐습니다. 순교자들의 굳은 믿음이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게 했습니다. ....)
이 시편은 끝부분에서 급반전을 합니다. 결론입니다.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야곱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드려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께서는 가련한 이의 가엾음을 업신여기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시고 그에게서 당신 얼굴을 감추지도 않으시며 그가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들어 주신다."(시편 22,24-25)
고통스러운 박해의 쓰라림 속에서 갑자기 환희의 송가가 나옵니다. 고통 속에서 가장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있지만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고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편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을 두고 시편의 한 절만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시 전체의 의미를 생각해야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시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무슨 뜻으로 기도하시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을 원망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찬미하셨습니다. 시편은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까지 만들어진 성경입니다. 예수님은 시편의 기도정신을 통달하신 분이십니다. (... 생략....... .촛불집회하는 이유는 혼란을 바래서가 아닙니다....다시는 이런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사후조처라도 철저히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
교훈시편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는 시편이 있습니다. 지혜시편, 교훈시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율법, 생활의 문제, 선과악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백성들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변증의 의도로 지어진 시편입니다.
1편이 시편 전체의 서론격이면서 지혜시편에 속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 1,1-2)
시편 제 1편은 어떤 길이 행복한 길인지 어떤 길이 불행한 길인지를 이야기해줍니다.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입니다.
"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 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어지는 겨와 같아라."(시편 1,3)
하느님 뜻을 따르는 사람을 흔희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제 삶 안에서 실천하면 행복이 옵니다. 행복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 때에,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감히 서지 못하리라.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기 때문일세."(시편 1,5-6)
마지막 심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의인은 하느님 곁에서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살아갈 때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시편과 예수님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도로 시편을 외웠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할 때 시편으로 기도했고, 시편으로 찬미하셨습니다. 설교하실 때도 시편을 많이 인용합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성경이 바로 '시편'입니다. 복음서와 서간에서 시편이 100군데 이상 인용되어 있습니다.
* 예수님의 행복선언에서: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마태 5,5)
* 예수님이 바리사이파들과 메시아에 대해서 논쟁하실 때:
"‘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 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마태 22,44)
이 말씀은 시편 110편 1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아를 다윗왕같은 정치적인 후손이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은 메시아를 하느님의 구원업무를 맡기 위 해 오신 어린양 희생양이라고 말씀하십니다....(부분부분 강의내용이 많이 빠졌 습니다.)
* 최후만찬 후에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마태 26,30)
이때의 찬미가는 바로 시편입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신 말씀도 시편입니다.
"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 르짖으셨다. 이는 “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뜻이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 주 진실하신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구원하시리이 다."(시편 31,6)
시편과 그리스도인들
* 이스라엘백성의 시편과 그리스도인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초대교회부터 그리스도인, 새로운 하느님 백성들은 시편으로 기도하고 시편을 전례에 사용했습니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에페 5,19)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골로 3,16)
* 신부님들이 매일 바치는 기도를 성무일도라고 합니다. 성무일도는 거의 시편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 그리고 우리가 미사 때 바치는 기도문 중에 많은 구절들이 시편에서 나옵니다.
제 1독서와 2독서 사이의 화답송도 시편입니다.
* 많은 성가도 시편에서 가사를 따왔습니다.
* 연도 기도문도 시편입니다.
시편기도는 옛 구약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딱 하나,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기도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주님의 기도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기도가 시편기도입니다. 시편기도에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들에게 듣고 싶은 말들, 감사하고 찬미하고 탄원하는 말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이 성경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시편이 하느님 말씀이 된 이유는 시편기도가 하느님께서 듣고자 하는 말이고 하느님께서 들려주고자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기도소재가 되면, 하느님께 감사도 드리고 탄원도 불평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밖에 없습니다."라고 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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