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교실(구약) : 자료 - 30
너희를 해방시켜 주리라
* 이사야서
- 제 1 이사야서(1-39장) : 남 유다 왕국에서(기원전 740-700년경)
- 제 2 이사야서(40-55장) : 유배지 바빌론에서(기원전 550-540년경)
- 제 3 이사야서(56-66장) : 귀환한 예루살렘에서(기원전 530-510년경)
* 제 2 이사야 예언자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가 기원전 550년에 메대 왕국을 패배시키고 기원전 546년에는 리디아를 정복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다가 마침내 기원전 539년 바빌론을 무너뜨리고 소아시아의 지배자로 등장했다. 제 2 이사야 예언자는 바로 이 시기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 제 2 이사야서의 메시지
제 2 이사야의 예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배지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서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기쁜 소식을 널리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 2 이사야서를 ‘이스라엘을 위로하는 책’이라고 불렀다. ‘위로’는 제 2 이사야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 제 2 이사야서의 하느님께 대한 칭호
- 창조주(創造主) : 우주만물은 태초에 하느님의 창조를 통해 비롯되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만이 역사의 주재자가 되신다. 노예살이에서의 해방은 하느님 창조의 연장이다.
- 속량주(贖良主) : 하느님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힘조차 없는 이스라엘의 ‘속량주’(go'el ‘구원자’)이시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가족’으로 선택하시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주실 것이다.
* 제 2의 출애굽
이집트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파라오는 제압하여 탈출하도록 하셨고, 홍해(갈대바다)에 이르렀을 때에는 바다를 가르고 길을 내어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구해내셨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당신 백성에게 제 2의 출애굽을 이루어주신다. 바빌론에서 귀양살이 하던 사람들이 오아시스로 변한 광야의 길을 통과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온건한 통치자였다. 그는 바빌론을 정복했지만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형식을 존중했고, 포로들을 이주시키는 바빌론의 기존 정책을 폐지하고, 귀양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주선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이방인의 왕인 키루스를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래서 그에게 당신이 세운 목자로서의 기능을 다하도록 기름을 부어주신 것이다.
* 이스라엘의 선택과 사명
이스라엘의 사명은 자신들의 역사와 생활을 통하여 지상의 모든 인류 가족들에게 하느님의 권능과 축복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참다운 의미이다.
* 바빌론의 몰락과 귀향길
바빌론을 정목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은 기원전 538년 포로석방 칙령을 내려 유배지의 이스라엘인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고향으로 귀환하도록 한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쓰라린 유배생활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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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주제 :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 읽어야 할 성경 : 이사 49 -66장
* 성경 구절 쓰기 : 이사 42,1-4 : 49,5-6 : 50,5-6 : 52,13-15 : 53,3,12 : 57,17-19 : 60,1-3 : 61,1-2 : 65,17-19 : 6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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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김양진 선생님의 2008년 4월 16일 성경강의 정리입니다.>
너희를 해방시켜 주리라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자기 정당화의 심리적 동인이 되어버림
예언서를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어두운 이스라엘 역사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왜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까? 생각해보신 적 있지요? 92년에 다미 선교회가 휴거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19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휴거가 그 날짜에 일어나지 않았으니 정상적인 사람들 같으면 ‘내가 헛것을 믿었구나’ 생각해야하는데, 거기 빠진 사람들은 그 후로도 여전히 믿습니다. 심리학에서 그런 현상을 ‘인지부조화’라고 합니다. ‘우리들 기도가 부족해서 휴거가 안 왔다. 우리는 더 열심히 기도해야 된다’면서 계속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었던 것을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하면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하니, 합리화를 합니다. 틀렸다고 지적받는 게 싫어서 옳다고 계속 생각합니다. 인지능력이 조화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일본 후소사 교과서, 한국 뉴라이트 교과서
일본이 교과서를 왜곡하는 이유는 일본은 나쁜 나라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입니다. 그들은 대동아공영을 위해, 모든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서 성전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후소사 출판사의 극우파들이 자기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썼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우파들이 뉴라이트 교과서를 썼습니다. 뉴라이트란 새로운 우파, 극우보수 라는 뜻입니다. 뉴라이트의 큰 인물이 청와대에 앉아있습니다. 뉴라이트 교과서에서는 일본이 식민지시대에 우리나라 근대화를 도와줬다고 얘기합니다. 뉴라이트에는 본인이나 집안이 친일전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을 나쁘다고 말하면 그들이 일본에 협조했던 과거가 부정되니까 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살 길은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좌파 빨갱이를 처단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 교과서와 거의 같은 내용의 교과서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보급하겠다고 나섭니다. 그 뉴라이트 회원 중 많은 수가 이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어떤 당이 아파트 값 올려주고, 종부세 없애준다고 하니까 표를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 경기지방 사람들은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져서 그 당 출신 국회의원들을 다시 뽑아주었습니다.
맹목적 지지, 맹목적 신앙, 맹목적 추종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맹신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인지부조화 현상’ 때문입니다. 교육?..... 특정계층만을 위한 정책을 펴 나갈 것이 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니들이 잘못 뽑았으니 고생 좀 해봐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5년 후에 다시 안 뽑아줄까요? 아닙니다. 5년 후에 또 인지부조화가 작동해서 또 찍어주기 쉽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투표율이46% 그 중 제 1당이 36%가 지지했으면 전체 유권자의 16,17 % 정도 됩니다. 대개 어떤 사회가 극우세력이 5~15%가 되면 극보수로 간다고 합니다. 16%정도의 사람들이 인지부조화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자기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때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합니다. 46%중에서 36%지지 받아 제 1당이 되는 시대가 다시 오면 안됩니다. 70~80%국민들이 투표해야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을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여기 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답게 만들어야 하고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아야합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예언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예언자들은 희망적 이야기를 합니다. 미래의 하느님 나라, 미래의 메시아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에 주는 희망적인 예언은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겨자씨가 자라나서 큰 나무 이루듯이,....... 하느님은 소수의 남은 자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대형 개신교가 문제점이 많은데, 그 신자들이 인지부조화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오늘 제 2이사야서를 공부하면서 “내가 혹시 인지부조화 상태가 아닌가” 반성해야하겠습니다. 그런 반성을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 삶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이사야서는 3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제 1 이사야서(1-39장) : 남 유다 왕국에서(기원전 740-700년경)
- 제 2 이사야서(40-55장) : 유배지 바빌론에서(기원전 550-540년경)
- 제 3 이사야서(56-66장) : 귀환한 예루살렘에서(기원전 530-510년경)
오늘은 제 2이사야서의 앞부분을 공부하겠습니다.
기원전 605 - 562년 : 네부카드네자르 왕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지리적 상황을 먼저 배우고 성경을 읽으면 쉽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빌론에 가 있습니다. 지도 보시면..........
기원전 605년부터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아시리아를 물리치고 바빌로니아를 건설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기원전 562년에 죽습니다. 그 후로 불과 몇 년 사이에 왕이 세 번이나 바뀌고, 바빌론이 쇠퇴합니다.
기원전 539년 : 키루스 왕의 바빌론 정복
기원전 550년 메대 왕국(이란 지방)점령,
기원전 546년 리디아 (터키 서부) 점령
기원전 539년 바빌론 점령
바빌론이 쇠퇴한 틈을 타서 페르시아가 세력을 떨칩니다. 페르시아는 아주 조그만 나라였는데 왕 키루스가 등장하여 기원전 550년에 메대왕국을 점령합니다. 기원전 546년에 리디아를 점령하고, 바빌로니아를 539년에 정복을 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형성합니다. (영화 300은 페르시아와 스파르타 왕국의 싸움이야기입니다.)
제 2 이사야는 바빌론의 멸망까지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원전 550-540년까지 활약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로와 구원의 선포>
제 1 이사야 : 심판의 메시지
이사야서 전체의 메시지는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이 사람들을 멀리 쫓아내 이 땅에는 황량함이 그득하리라.
아직 그곳에 십분의 일이 남아 있다 하여도 그들마저 다시 뜯어 먹히리라. “(이사 6,12)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예언자를 보내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1이사야 예언자는 심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2 이사야 : 위로의 메시지
제 1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와는 달리, 두 번째 이사야 예언자의 활동시기는 이스라엘이 이미 멸망하고, 백성들이 바빌론에 유배가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 2이사야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어야합니다. 제 2이사야서의 가장 큰 주제는 위로입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이사 40,1)
해방의 기쁜 소식(福音)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가장 기쁜 소식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고향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귀양살이하는 사람들이 들을 가장 기쁜 소식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셔서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신약의 복음입니다.
제 2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할 당시는 유배지에서 풀려나는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제 2 이사야 예언자의 소명이었습니다.
다정히 말하여라 : 마음에 대고 말하여라
제 2 이사야 예언자도 천사의 말씀을 통해 소명을 듣습니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이사 40,2)
애인에게 말하면서 설교하듯이 하지는 않습니다. ‘다정히 말하여라’ 라는 뜻은 ‘마음을 움직이도록 다정하게 이야기하여라‘라는 뜻입니다.
호세아 예언서가 기억나실 겁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거기에서 나는 그 여자에게 포도밭을 돌려주고 ‘아코르 골짜기’를 희망의 문으로 만들어 주리라. “(호세 2,16-17)
호세야 예언서에서는 이스라엘을 신랑인 하느님을 배반한 창녀로 이야기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몹쓸 짓을 한 이스라엘을 광야로 불러내서 다정히 말하면서 정화의 기회를 주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2이사야 예언자는 이제 하느님께서 다정히 말씀해주실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정화와 쇄신 : 새 출발의 기회
바빌론 포로생활 해방
죄악의 노예생활 해방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2)
이제 복역기간이 끝났다. 무슨 이야기지요? 하느님께 죄를 지어서 벌을 받았는데, 그 벌 받는 기간이 다 끝났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배생활에서 풀려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정치적인 해방에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벌을 곱절로 받았었는데, 그 죄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2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에 새로운 시대가 결정적으로 오게 되리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인도하는 하느님의 개선행진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이사 40,3)
천사의 목소리가 외칩니다. ‘광야에 길을 닦아라.“ (대통령이 가는 곳에 길이 나쁘면 길을 고쳐놓습니다. ) 하느님이 바빌론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당신 백성들을 데리고 나와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먼저 바빌론을 이겨야 가능합니다. 하느님이 개선장군처럼 고향으로 가는데 그 길이 광야길입니다. 임금님이 백성들 데리고 고향을 가니, 임금님이 개선을 하니, 길을 잘 닦아 놓으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위한 개선장군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은 가시는 길에 아무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은 노예생활하는 백성을 해방시키러 가는 왕입니다.
온 인류에게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는 주님을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을 시킵니다.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마태 3,3)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왕 중의 왕입니다. 그 왕이 온 인류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는 개선장군으로 오십니다. 예수님 오시는 앞길에 큰 길을 놓아야 합니다. 장애물 없이 치워야합니다. 신약은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하느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 2이사야서를 공부하면서 신약성경을 도외시하면 이사야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신학적인 중요한 메시지들이 제 2이사야서에 담겨있습니다.
인간 : 보잘 것 없고 유한한 존재
영원하신 하느님 :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지만 역사를 초월하시는 분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이사, 40, 6-8)
잠언 말씀 같지요? 우리 인생이 아무리 젊고 예뻐도 나이 먹고 나면 늙습니다. 꽃이 아무리 화려하게 피어도 시간이 지나면 시듭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감옥에 가고, 갈 위기에 있습니다. 감옥에 갈 위기에 있습니다. 김용철 변호가가 처음 비리를 고발했을 때.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라고 했습니다. 계란으로라도 바위를 쳐야합니다. 그래서 고쳐지는 게 있습니다. )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고대에는 각 나라가 믿는 신들 중에서 우세한 신을 섬기는 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유배되어 있지만 하느님이 약해서 진 것이 아니다. 목적이 있다. 나중에 밝혀질 거다. 인간이 자기 힘, 재력, 미모재주를 자랑하고 하느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면 한낱 풀, 꽃과 같이 된다.’ 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다.>
돌아오신 하느님 : 새로운 시대의 시작
에제키엘의 환시 기억나시지요?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에제 43,4)
하느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실 때는 당신과 계약을 맺은 백성이 계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쫓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을 예루살렘을 떠나셨다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떠나셨던 하느님이 돌아오실 것이라고. 이제 그 시기가 다가왔다고 말합니다.
<위로와 구원의 선포>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이사 40,9)
하느님이 안 계신 상태에서는 이스라엘이 멸망했습니다. 이제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은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 자체가 복음입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이라고 얘기하지만 ‘예수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그 의미를 아시겠지요? 예수님 자신이 복음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 자체가 복음입니다.
해방과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선구자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시고 구원해주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하고 다른 민족들에게 떳떳이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이사 40,10-11)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시는 이유는 당신의 통치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루 고루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은 왕으로서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임금이십니다. 하느님은 통치권을 행사하러 오십니다.
착한 목자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어떻게 통치하러 오실까요?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하느님은 이제 정복자로서, 개선한 왕으로서 오십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 정복하면 백성을 죽이고 불지르고 포로로 잡아가고 금은 보화를 뺏어갑니다. 징기스칸,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등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정복자로 오신 임금님, 당신의 통치권을 행사하러 오신 임금이신 하느님은 착한 목자로 오십니다. 하느님의 통치는 세상의 정복자들과는 달라 우리 모두 하나하나를 안아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착한 목자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신약의 예수님도 “나는 착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위대하심>
마르둑(Marduk) : 인간이 만든 우상
하느님 : 우주와 역사의 주인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신 하느님은 어떤 권능을 갖고 계십니까?
“그분께서는 지배자들을 없애 버리시고 세상의 통치자들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 버리신다. “(이사 40,23)
그 시대에 가장 강력한 통치자였던 네부카드네자르가 믿고 있는 신은 ‘마르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네부카드네자르가 믿고 있는 신, 마르둑이 힘이 제일 강하다고 믿었습니다. 제 2이사야는 그 강력하다는 왕국도 사람이 빚어서 만든 우상에 불과하고, 아무 힘이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우주, 인간의 모든 역사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마르둑’이 강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목적을 위해 바빌론을 사용하신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신뢰를 가져라>
‘창조주’이신 하느님 : 해방은 창조의 연장
굳은 의지와 새로운 활력
귀양살이하는 백성들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환경은 좌절감입니다.
이사야는 신뢰를 갖도록 이야기합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이사 40,28)
제 2이사야서에서 하느님을 두 가지로 부릅니다. 그 중 하나가 ‘창조주 하느님’입니다. 지금 우리는 창조주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2 이사야가 활동할 당시에는 오늘날 같은 완성된 성서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주이심을 제일 강하게 선포한 예언자가 제 2이사야입니다. 하느님은 창조주, 우주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한 온 인류의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고 서로 돕고 편안하게 살게 하고 싶어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귀양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해방시키는 것은 죽었던 목숨을 다시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이다.
이사야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너희를 구원하러 올 시기가 왔으니,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40,31)
“우리가 귀양살이하고 있지만 우리를 구하러 오시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느님이시니 희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다는 것을 알면 굳은 의지와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따를 때 독수리 같은 힘을 얻게 되고, 지칠 줄도 피곤할 줄도 모르게 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키루스의 소명>
키루스의 연전연승 : 하느님의 구원계획
키루스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승리를 불러오는 이를 누가 동방에서 일으키셨느냐? 그분께서 그에게 민족들을 넘겨주시어 그가 임금들을 굴복시킨다.”(이사 41,2)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다는데, 어떤 현실적인 방법으로 구원해주실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제 2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키루스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바빌론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키루스에 있다. 키루스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이유는 지가 힘이 세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역사를 지배하신 하느님께서 이미 계획하고 계신 것이다.“
이사야는 하느님이 키루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자기 권리를 되찾을 힘이 없는 이스라엘
이집트 노예생활할 때 이스라엘은 벌레나 구더기 신세만도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기 땅으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자기 권리를 되찾을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느님이 구원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이사 41,14)
빈정 상하게 하려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벌레나 구더기처럼 보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노예신세이니 벌레만도 못한 신세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벌레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아. 내 아들들아.” 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 이스라엘의 ‘속량주’
‘구원자’ : 속량주(贖良主)
속량주 - 인간생명은 하느님 것
자격 - 그 가족과 가장 가까운 친척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제 2이사야 예언자의 하느님께 대한 중요한 칭호 두 가지, 하나는 ‘창조주’, 하나는 ‘구원자’입니다. ‘구원자’란 원래는 ‘속량주’라는 뜻입니다. ‘속량주’라는 개념은 레위기에서 나옵니다.
“너희 형제가 가난해져 자기 소유지를 팔 경우, 그에게 가장 가까운 구원자가 나서서 그 판 것을 되사야 한다.”(레위 25,25)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가나안 땅은 하느님 땅입니다. 하느님께서 유산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산으로 주셨던 땅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빚을 지게 됩니다. 사람이 빚으로 저당 잡히고 막판에 돈 없으면 땅이라도 팔아야 되는데 그 땅을 팔 수가 없었습니다. 땅을 팔면 이스라엘 사람이 못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 유산을 팔아먹으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레위기에 적힌 이스라엘 율법에 의하면, 그럴 경우에 가족의 가장 가까운 친척남자가 속량주가 되어서 그 땅을 되사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자격을 갖추도록 도와주게 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복지법입니다.
나중에 나아가서 속량주가 어떤 역할까지 하냐면... 내 가족의 생명이 해침을 당할 경우에 속량주가 생명값을 받아야합니다. 그게 목숨이면 목숨으로 받고, 물질이면 물질로 받아야합니다. 이처럼 속량주는 힘없고 가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을 도와주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힘이 없어 귀양살이를 하니 자기들 힘으로는 하느님이 주신 유산인 땅을 차지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속량주로 나서주신다는 말입니다. 속량주의 자격은 그 가족과 가장 가까운 친척입니다. 이스라엘의 속량주는 하느님이십니다.
고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인정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유는 당신의 자녀이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하느님의 가족, 하느님의 자식입니다. 그 가족이 비참한 처지에 있을 때, 구원해주시는 분이 바로 창조주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신약에서는 속량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제 2이사야서를 공부하지 않고 신약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경이로운 구원길>
해방과 구원을 위한 새로운 창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속량해주러, 이스라엘을 구원해주러 오시는 길이 어떤 길인가? 하느님의 창조는 과거의 일, 일회적인 일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는 일입니다.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이사 41,18
하느님의 창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다시 생명을 줘서 건져내는 것도 하느님의 창조의 연장,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출애굽할 때는 목말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지팡이로 ........... 이제는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로 인해서 광야가 옥토처럼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죄에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들도 다시 창조된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의 권능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이사 41,20)
창조주 하느님께서 이 모든 우주를 당신 권능으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하느님이 힘이 약해서 귀양살이 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의 권능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당신 백성을 모으시고 보살피시는 하느님
그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해 뜨는 곳에서 너의 후손들을 데려오고 해 지는 곳에서 너를 모아 오리라. 내가 북녘에 이르리라. ‘내놓아라.’ 남녘에도 이르리라. ‘잡아 두지 마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 나의 딸들을 땅 끝에서 데려오너라.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이사 42,5-6)
하느님이 이제 당신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당신을 진실로 따르는 충실한 남은 자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을 보살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돌봐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탈출>
출애굽을 이루어주신 하느님
제 2의 출애굽을 이루어주시는 하느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속에 큰길을 내신 분 ”(이사 43,16)
제 2이사야는 유다백성들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서 귀환하는 것은 제 2의 출애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출애굽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전에 경험한 바 있습니다. 출애굽 때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권능으로 파라오를 제압하셨습니다. 열가지 재앙..... 바다를 쳐서 길을 냄.....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한민족이 창조된 사건입니다.
그 하느님이 이제 두 번째 출애굽을 이루어주신다고 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43,19)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는 바다를 갈라 길을 내주셨었는데, 제 2의 출애굽에서는 광야를 옥토로 만들어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첫 번째 출애굽 때는 불기둥, 구름기둥,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고, 만나를 주셔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편안히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시겠다하고 말하십니다.
<주님께서 키루스를 세우시다.>
키루스 : 온정적인 통치자
“나는 키루스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나의 목자. 그가 나의 뜻을 모두 성취시키며 예루살렘을 두고 ′그것은 재건되고 성전은 그 기초가 세워지리라.′ 하고 말하리라.’(이사 44,28)
키루스라는 왕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으면서도 아시리아나 바빌론 왕처럼 정복자 행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파괴하거나, 포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주 온정적인 왕이었습니다.
키루스는 바빌론을 점령했지만 바빌론의 신들을 그대로 믿게 해주었습니다. 바빌론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었는데 키루스는 그런 정책을 폐기했습니다. 더구나 바빌론에 억류된 포로들까지 해방시켜주었습니다. 키루스는 자비로운 왕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당신께서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 키루스에게 말씀하시니 민족들을 그 앞에 굴복시키고 임금들의 허리띠를 풀어 버리며 문들을 열어젖히고 성문들이 닫히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이사 45,1)
키루스를 ‘나의 목자’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기름부었다‘라고 합니다.
“기름부음 받은 이” : 메시아 messiah
하느님의 도구로 사용된 키루스
‘키루스’를 ‘기름 부음 받은 이’라고 불렀는데. 그 당시의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뜻은 ‘신약시대의 메시아, 하느님 나라를 다스릴 구세주 개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하는 왕이나 사제나 예언자들에게 기름 부었습니다. 키루스는 이방인들의 왕이지만 억압받은 사람들을 풀어주었습니다. 포로생활 하는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 하느님 통치인데.. 그 통치를 할 수 있는 목자답게 ‘기름부음을 받았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당시 키루스는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긴 역사를 볼 때 키루스도 하느님의 일을 담당한 일꾼인 것입니다.
바빌론의 몰락
기원전 539년 : 키루스 왕의 바빌론 정복
바빌론도 오래 갈 수가 없었습니다.
“너는 네 사악함으로 자신만만하여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하고 말하였다. 너의 지혜와 너의 지식이 너를 현혹시켜 너는 마음속으로 ‘나뿐이다. 나밖에는 없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불행이 너에게 들이닥치리니 너는 그것을 요술로도 막아 내지 못하리라. 이제 파멸이 너를 덮치리니 너는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또 네가 알지도 못하는 멸망이 순식간에 너에게 들이닥치리라.“(이사 47,10-11)
힘센 강대국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위험이 자만심입니다. (세계보안관은 미국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데나 총을 휘두릅니다., 아프간에서도 이라크에서도 그랬습니다. 미국은 그 자만심 때문에 지금 손가락질 당하고 빚더미에 있습니다. 그것을 추진한 대통령 꼴이 말이 아닙니다. 자만심에 빠지면 약한 사람 짓밟게 되어 있습니다.) 바빌론이 주변국가를 점령해왔지만 그들의 멸망은 한 순간입니다.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이 허망하게 정복당합니다. 페르시아와 바빌론이 변방에서 싸웠는데 바빌론이 졌습니다. 그 후 2-3주 만에 바빌론 수도가 함락됩니다. 자진항복한 것입니다. 권력, 국가....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늘 겸손해야합니다.
바빌론 탈출과 귀향길
기원전 538년 : 키루스 왕의 포로석방 칙령
“너희는 바빌론에서 나와라. 칼데아인들에게서 도망쳐라. 환호 소리 올리며 이 일을 알리고 전하여라. 땅 끝까지 퍼뜨려라. “주님께서 당신 종 야곱을 구원하셨다.” 하여라.“(이사야 48,20)
바빌론의 멸망으로 이스라엘은 해방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합니다. 더구나 키루스는 온정적인 왕이었고 정복자였기 때문에, 포로석방 칙령을 내렸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 중에서 원하는 사람들은 고향에 가도 좋다고 칙령을 내립니다. 이스라엘은 지긋지긋한 바빌론 유배생활을 끝냅니다.
어느 한 국가나 한 인간이 감옥에서 풀려났다거나 다른 나라의 압제에서 풀려났다고 해서 일이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 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구약에서 가장 심도 있게 신약에 영향을 준 부분이 제 2이사야서 후반부, ‘종의 노래’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주님의 종’이 어떤 존재이고 그런 ‘주님의 종’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배우겠습니다. 꼭 읽어보시고, 써 오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배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수난희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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