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편지

26. 웃음이 나서

김레지나 2008. 9. 12. 21:39

큰일 났어요.

어제 제가 기차에서 자꾸 웃다가 남편한테 소리 들었다고 했잖아요.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해서 제가 하느님이 너무 재밌는 것 같아서 그런다고 했지요.

남편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제정신이 되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어요.

근데 오늘 아침부터 다시 그 증상이 시작돼서 계속 낄낄대고 웃고 있어요.

정말 큰 일이예요.


저 요즘에 너무 행복하니까 제가 환자라는 것을 잊고 산단 말이예요.

정상이 아닌거죠. 점점 이상해지더니 이제는 실실 웃기까지 하고....


하느님이 화장실에서 말씀을 주셔서 당신 스스로 망가진 셈이잖아요.

그것 때문에 제 글을 읽는 사람들한테는 영영 폼 못 잡으실 것 아니예요? 그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또 하느님이 어디 쓰실 사람이 없어서 저 같은 장난꾸러기를 쓰실까 하고 웃었지요.

저 때문에 하느님 스타일 다 구기게 될 줄 아셨을까요?

남편과 저, 0000을 차례로 백수로 만들어 주셔서 모두가 더 재밌게 살게 되었잖아요?

아닌가? 0000님은 아니시더라도 남편과 저는 그래요. 그것도 생각할수록 재밌는 거예요.

하느님도 재밌는 장난을 잘 치세요.

하느님이 그렇게 재밌는 분이구나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나와요.

앞으로도 서로 폼 잡고 지내지 말자고 했어요. 하느님한테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저보고 유치하다고 어이없어 하대요.

그래도 어떡해요?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요.


오늘은 하필 고통의 신비 묵상할 차례여서 9일기도 책을 보고 기도를 하는데요.

고통 묵상이 완전히 불가능했지요.

책에 실린 성화를 봐도 웃음만 나고,, 가시관 쓰신 모습을 봐도 웃음이 나고, 하도 웃어서 죄송하더라구요.

예수님이 딱 저를 째려보시는 것 같아서 한 말씀 드렸지요.

"예수님, 다음에 오실 때는 방송으로 설교하실 거라던데,, 개그맨처럼 재밌는 모습 보여주세요.

가시관 같은 거 쓰시지 말구요. 요즘 사람들 심각한 거 싫어하거든요."라구요.

그랬더니 알았다는 듯이 끄덕끄덕 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번에 000을 위한 9일기도는 실패할지 몰라요. 오늘 제가 예수님 고통을 보고 너무 웃어서요.

괘씸해하실 것 같아요. 이제까지 한 거 아까워서 어떡하죠? 큰 일이네요. ㅋㅋ


앞으로도 큰 일이예요.

다음에 탁솔 맞고 저는 아파 죽겠는데 자꾸 킬킬대면 다른 사람들이 제가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안 믿을 거 아니예요. 아무도 저를 안 챙겨주면 어쩌지요?

유미가 들었다는데.. 어떤 신부님이 성령안수 받은 후에 웃음보가 터져서 한 시간 동안 깔깔 웃으셨대요.

거기 모인 사람들은 그 신부님을 보고 웃겨서 계속 웃었구요.

제가 오늘 자꾸 웃음이 나오니까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제가 하느님 스타일을 망가뜨렸다고 하느님이 저에게 복수를 계획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요.

지금 이상태가 계속되면 이번 00 성령안수식 때 제가 웃음보가 터져서 사람들 웃음거리가 되지 싶어요. 사람들 앞에서 웃음보 터지면 무슨 챙피냐구요.... 하느님의 복수를 저지할 방도를 찾아야겠어요.


그리고요.

큰 아들이 아빠 닮았구요. 작은 아들이 저 닮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해요.

성격도 둘째가 저를 닮았어요. 둘째는 저 닮아서 아주 맹랑해요.

첫째는 아빠 닮아서 에프엠이구요.

아침에 눈 뜨자 마자 호박 속에 갇힌 모기 피에서 DNA를 추출하면 공룡도 복제시킨다는데 다른 동물도 가능하겠느냐고 정훈이가 물어요.

그래서 제가 "그럼 당연하지".. 그랬더니..

형주는 "그걸 장담할 수는 없지요"하고, 정훈이는 "그때 그때 다르지-"하대요...

정훈이가 아침밥 먹으면서 책 보느라 느리고 있길래

제가 "다음에는 니 스스로 시계보고 늦지 않게 챙겨라" 했어요.

정훈이는 작년에 시계보는 법 배웠는데 자세한 건 잊어버렸나 봐요.

제가 "아빠한테 다시 배워라." 그랬더니 그녀석이 "별 것도 아닌 것 갖고 구박하네"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젓가락질도 안 가르쳐 주었다고 투덜대구요.

안 가르쳐 주기는요. 몇 번 가르쳐 주었는데 지가 안하는 거지요.

또 형이 집을 나섰다가 체육복 깜박했다고 다시 들어와서 지각하게 생겼다고 울상이 되어 있는데,,

정훈이 녀석은 (저 지각 잡는 시간이 형이랑 같은데도 태평하게 책 읽고 있다가)

"정신이 산만해서 되겠어? 산도 보통 산이 아니지. 에베레스트산만하다."하고 형에게 핀잔을 주어요.

 

아무도 정훈이를 못 이겨요. 지가 뭘 잘못하는지 몰라요. 다들 지 말에 웃어버리니까요.


제 이야기가 어이 없지요? 저처럼 이상해지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그럴 거예요. 흑!

저처럼 너무 자주 웃지는 마시고, 폼 살리는 한도 내에서 많이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