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힘에서 무력에로,
강함에서 약함에로,
창조주에서 피조물에로,
위대함으로부터 작음에로,
독립에서 의존에로 그렇게 자신을 옮기고 싶어 하셨다.
이것이 바로 육화의 신비이다.
하느님께서는 약하고, 초라하고, 작고,
하염없이 의탁해야만 되는 바로 그런 자리에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 굶주림에 지친 이, 장애인, 정신지체인, 병약하고 노쇠한 이들, 무력한 이들이 있는 바로 그런 자리에 함께 계신다.
우리 삶의 초점이 성공, 영향력, 권력과 힘에 가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하느님을 알아 모실 수 있단 말인가?
점차로 나는 상처와 외로움, 그리고 인간적 필요가 있는 곳에
우리의 의지와 지향이 기꺼이 가 있어야만 된다고,
바로 그런 노력 여하에 우리의 신앙이 달려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일 우리 교회에 미래가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그 모습에 우리 교회의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각자가 매우 진지하게 이런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또 그렇게 추구해 간다면
우리는 서로 서로를 도울 수 있게 된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고 온 인류의 마음속에 살아 계시는
그 작고 초라한 아기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서는 길뿐이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아기예수께서 바로 우리 안에 살고 계심을 모른 채로 살아가 버린다.
우리가 그분을 발견할 때
우리에게는 정말 기쁨이 넘쳐나리라.
헨리 노우웬 신부의 ‘육화의 신비에 대한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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