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속에 쓰여 있는 모든 것은 어떤 창작이나 유명세를 타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나타나셨고.... 나는 그분을 보았으며....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외침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개인적인 운명에 처해진 한 인간의 증언일 뿐이다.
"사적 계시의 경우 믿지 않기보다는 믿는 것이 더 낫다. 믿었는데 진실한 것으로 판명되면 믿었으므로 기쁠 것이고, 성모님께서도 그렇게 하기를 요청하시기 때문이다. 믿었는데 거짓으로 판명되었더라도 진실한 것일 때 받을 수 있는 축복은 다 받게 된다. 진실한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교황 우르바노 8세, 123-44)
모든 좋은 것을 시험해보고 좋은 것은 꼭 붙드십시오.(데살 5,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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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
나는 혼잣말로 ‘바로 성찬 속의 예수께서 감실 안에 계시고 성경이 있고 신앙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 계시 혹은 발현 등이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라고 중얼거렸다. 발현을 보려고 산 위에 오른다는 것은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7월 첫날 아침 미사에서 나는 계시에 대한 강론을 하면서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계시이며 성 요한이 죽음으로 해서 계시가 완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자,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찾으로 산에 가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들 사이에 저 감실 속에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분과 함께 계시는데 무엇을 아직도 찾고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 본당 신자들은 굉장히 슬퍼했다.
고백컨대 그 강론은 정말로 불운이었고 불행이었다. 또한 강론 준에 나는 성사와 교회에 무관심한 모든 호기심에 찬 사람들을 꾸짖었다.
야단맞고 앉아 있는 축 쳐진 신자들을 보면서 그 날 오후 함께 기도하기 위해 성당으로 오라고 했다.
P25
여름이 시작되기 전 학교는 방학에 들어갔고 마찬가지로 교리 교육도 끝을 맺었을 때 가까운 곳이나 먼 지역에서 온 사제들이 발현 장소를 보러왔고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 물어 왔다. 어느 날 약 50여 명 정도의 사제들이 모인 모임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여러분들은 지금 바위돌 사이의 성모님을 찾아보기 위해 성사 속에 살아계신 예수님, 오늘 여러분들의 손에서 축성되던 빵의 형상의 바로 그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왜 여러분은 성체조배를 하기 위해 본당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또 나는 그들 사제들을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성당으로 초대하였으나 모두 산으로 올라가고 아무도 나와 함께 남은 사제는 없었다.
나는 “내 손으로 만져 보지 않은 이상 절대로 믿지 않겠다.‘라고 한 토마사도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
7월 첫날 우리들의 기도 모임은 저녁 6시경이었는데 아주 짧은 순간 나는 혼자 성당에 남아 있었다. 얼마 뒤 나는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보기 위해 성당 밖으로 나왔다. 모두 불순종하는 신자들이고 산으로 올라가 버린 그들이었다. 나는 슬퍼진 영혼을 안고 성당으로 들어와 성당 안의 성모상이 모셔 있는 왼쪽 세 번째 의자 장궤틀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신자들로 인해 좌절감에 빠진 나는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나는 “주님, 보십시오. 이 본당 신자들은 딱딱하기 그지없고 순종치 않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뽀르브르도 산에 올라간 본당 신자들 또한 그 시간에 믿지 않는 나를 생각하면서 매우 슬펐다고 한다.
기도할 수 없는 상태가 된 나는 성경을 펴 들었고 이스라엘의 목을 축여 주기 위해 바위돌에서 물을 솟아나게 하는 모세의 출애굽 사건을 읽게 되었다. 나는 “야훼여, 모세는 자기가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당신께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 이렇게 어둠에 있습니다. 마치 니느웨 사람들처럼 예언자 나훔이 백성들에게 도시의 멸망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저기로 방황했다.’라고 하는데 오른쪽이나 왼쪽 그 어느 쪽으로도 가야할 지를 몰랐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음 속에서 묵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강력하고 정확하며 뚜렷한 목소리를 들었다.
“밖으로 나가서 아이들을 보호하여라.”
나는 성경과 기도서를 의자 위에 놓고 무릎 꿇어 경배한 뒤 성당 중앙문의 오른쪽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숨이 턱에까지 찬 아이들이 뛰어오면서 “경찰이 쫓아온다. 빨리 숨자.”라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암탉이 병아리 새끼들을 품어 안듯이 그들을 껴안고 사제관의 내 방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하지 말고 조용히 있을 것을 당부하고 사제관 문을 열쇠로 잠근 뒤 아래로 내려갔다. 높은 종려나무에 도착했을 때 쯤 경찰이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경찰이 “아이들을 보셨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네, 보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들 모두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비아코비치 마을 쪽으로 내달렸다.
나는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기도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는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제관에서 발현하셨다. 나는 아주 천천히 발현 사건을 믿으려고 노력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이 커다란 은총을 받게 하기 위해 나를 준비시켜 주신 것으로 믿었다. 아이들은 성모님께서 “내일 성당 안에서 발현하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내게 전하였다. 지금까지 산 위에서 발현하시던 성모님께서 왜 성당 안에서 발현하시기로 결정하셨는지에 관해 아이들이게 물어 보았다.
야곱은 아주 간단히 대답하였다. “왜 신부님께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처음 사람들을 산으로 부르신 분이 내일 사람들을 성당 안으로 불러들일 것입니다.”
.......
로사리오 기도 중에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는데 처음에는 성당의 맨 끝에 계시다가 점차적으로 성당의 제대 쪽으로 오셨다. 우리는 로사리오 기도를 중단하고 성모님께 모두 아름다운 성가로 인사를 드렸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들의 응답이 고맙구나.”
그렇다. 나와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성모님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는 정말로 발현하고 계신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 뿐 아니라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들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진실이었구나.”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신자들이 옳았고 나의 불신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바위돌이 떨아져 고통당하게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 또한 은총을 받았다......
P29
저녁에 미사를 드렸다.
미사 끝에 나는 “미사가 끝났으니 평화로이 가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을 때 나의 팔과 손을 아래로 잡아끄는 느낌이 들어 내려다보니 목격자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야곱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본당을 위한 성모님의 메시지가 있다고 전하였다. 그 아이는 어리고 아주 키가 작았기 때문에 야곱을 제대 위로 안아 올렸을 때 보니 그 아이의 발은 맨발이었다. 소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오늘 성모님께서 발현하셔서 매일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고 함께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 왼쪽으로 멀리 떨어져 나 혼자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몇 번에 걸쳐 이야기했던 것인가 그럼에도 무감각하던 사람들이 한낮 저 작은 소년이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저렇게 박수를 치고 감동해 모두들 울다니,”
내 생각에는 정말로 단순한, 지극히 단순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말에 우는 것일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었단 말인가?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 당시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곱의 말을 통해 사람들은 바로 천상의 말씀을 들은 것이고 성모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었다. 나는 신자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제의실에 있었다.
제의를 벗고 성당의 내 자리에 돌아 왔을 때 꼼짝도 않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 신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본당 신자들은 커다란 은총과 빛으로 밝아져 성모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되었던 것이다. 천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그들을 들었던 것이다. 나는 신자들과 함께 온 밤 내내 성당 안에 남아 있었다.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며 기쁨에 넘쳐 울면서 관심을 갖고 감동한 마음으로 우리는 거기에 있었으며 바로 나도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갑자기 성당 안에 커다란 하나의 빛이 성당 뒷면 성가대석 쪽으로부터 오면서 한낮처럼 밝아졌다. 그 빛은 성당의 중심 쯤에 멈추어 섰고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발현하셨다. 그 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정확했는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매일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고 함께 기도하여라.”
두 시간 반 전에 어린 야곱이 전해 주던 말과 똑같았다. 그 말씀은 이미 믿고 있었던 신자들을 향한 말씀이었다기보다는 바로 그들의 본당 신부였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왜냐하면 아주 작은 의심이라도 갖기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발현초기의 강론...
P46
성모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가? 바로 우리가 표시를 되찾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막에서 뱀들로 인해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이때 모세가 야훼께 기도하러 가자 야훼께서는 청동 구리 뱀을 높이 들어 올리도록 하셨다.
모세는 백성에게 약을 준 것이 아니라 야훼의 표시를 들어 올려 보여 주셨다. 누구든지 표시를 보면 자유롭고 독까지도 이겨내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표시는 바로 십자가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 이름으로 파견하신다. 예수의 이름과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표시이다. 십자가는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킨다. 우리는 이미 신앙을 잊어 버렸기에 더 이상 표시를 바라볼 만한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편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죄에 떨어지게 하며 우리들을 좌절케 하는 십자가 또한 존재하는데 이는 바로 우리들의 자만으로부터의 결과이다. 십자가는 성모님 안에서 주님을 신뢰하고 성부께로 향한 신앙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껴안을 때만이 결실을 가져다준다. 밭을 일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처럼 십자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 수 없다. 십자가는 길이며 표시로써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 십자가는 내게 생명의 신비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선물이다. 십자가는 사랑의 기념비이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은 인간, 이기주의적이지 않은 인간이 여기 있다 라고 십자가가 말한다.” 이기주의는 평화와 결실을 주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나무를 생명의 나무처럼 박아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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