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교실(구약) : 자료 - 29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
* 에제키엘 예언자가 전한 메시지
- 1부(1-24장) :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고 징벌을 내리신다는
절망의 메시지
- 2부(33장-48장) :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구원해 주신다는 희망의 메시지
* 좋은 목자이신 하느님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배생활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친히 목자가 되어주시고 당신의 양떼를 한데 모으는 데 앞장서실 것이다.
* 미래의 왕국을 다스릴 목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다스릴 지도자로 파견하는 목자는 다윗 가문의 후손에서 나오며, 그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온 인류를 당신의 양떼로 다시 모아들여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보내신 참된 목자이시다.
* 새 마음과 새 영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인간성 안에 내적변화를 일으켜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근본적인 변화는 올바른 의식과 양심을 되살려 하느님의 법을 삶의 자세와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진심으로 복종할 자세를 갖추게 될 것이고, 하느님은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주실 것이다.
* 마른 뼈들의 부활
마른 뼈들은 멸망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즉 귀양살이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을 고향으로 데려다 주신다. 이는 유배에서 살아남은 이스라엘 백성이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민족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예루살렘의 새 성전
당신 백성 곁으로 다시 돌아오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바치는 곳이며, 새로 태어난 하느님의 백성이 영위하는 삶의 진정한 중심이 될 것이다.
* 성전에서 솟아 흐르는 물
하느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리고 물은 그 생명력을 상징한다. 에덴동산에서 강물이 흘러나와 온 세상을 적시듯이, 성전이 있는 산으로부터 생명을 주는 강이 흘러나와 대지를 풍요롭게 한다.
* 야훼 삼마 YAHWEH SHAMAH
다시 건설될 예루살렘 도성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으로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라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면 죽음도 생명으로, 절망도 희망으로 변한다. 생명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차이는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와 “하느님이 여기 안 계시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에제키엘서의 가르침
에제키엘 예언자는 조국 땅에 남아 있는 동포들의 운명을 걱정하는 동시에 유배지의 동포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하는 이중적 사명을 갖고 있었다.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온 세계에 미치는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는 하느님께서 궁극적으로 새 마음을 지닌 새 백성들을 한 데 모아 한 마음 한 뜻으로 당신을 섬기는 새로운 도성, 새로운 세계를 이루실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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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주제 : 너희를 해방시켜 주리라
* 읽어야 할 성경 : 이사 40 - 48장
* 성경 구절 쓰기 : 이사 40,1-4 ; 40,6-8 ; 40,10-11 ; 40,28-31 ; 41,14 ;
42,1-7 ; 43,16-19 ; 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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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김양진 선생님의 성경강의 정리입니다.>
(앞부분 이야기는 생략합니당. ^^)
<예루살렘 멸망 전과 후의 예언>
멸망 이전 : 1-24장 :하느님의 심판, 절망의 메시지
에제키엘서는 1부와 2부가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1부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이전의 예언입니다. 에제키엘은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게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1부 예언할 때는 아직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백성들이나 유배 온 사람들이나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유배 온 사람들은 편협한 애국심을 갖고 예루살렘으로의 귀환만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 백성의 기대를 깨뜨려야하니까 에제키엘은 강한 절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방민족 : 25-32장 :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중간에 이방민족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집트 바빌론, 에디오피아가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핍박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느님이 온 민족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기에 이방민족들도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느님이 아니고 온 인류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십니다.
멸망이후 : 33-48장 : 하느님의 구원, 희망의 메시지
오늘 배울 부분, 2부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많은 백성들이 바빌론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를 에제키엘이 예언합니다. 이 순간부터 에제키엘 예언의 톤이 완전히 바뀝니다. 절망의 메시지에서 희망의 메시지로 완전히 바뀝니다.
에제키엘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징벌하시지만 결코 끝이 아니다. 곧 구원해주신다. 그러니 하느님의 구원에 희망을 걸어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소식>
다시 열린 입 : 새로운 국면의 시작, 예언활동의 재개
2부는 에제키엘에게 예루살렘 멸망 소식이 들려오면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유배살이 제 십이년 열째 달 초닷샛날에, 예루살렘에서 온 피난민 한 사람이 나에게 와서,”도성이 함락되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 피난민이 오기 전날 저녁에,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는데, 아침에 그가 나에게 오기 전에 그분께서 내 입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입이 열려 더 이상 벙어리가 아니었다.”(에제 33,22)
에제키엘 아내의 죽음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로 에제키엘이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예언자의 입이 닫혀졌다는 말은 하느님 입이 닫혀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입을 막은 것은 ‘백성들에게 더 이상 해줄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질병에 걸린 사람이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괜찮다고 우기면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소식이 들려오기 바로 직전에 하느님이 에제키엘의 입을 다시 열어주십니다.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므로, 예언자가 새로운 예언을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된 것입니다. 예언자는 이제 절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목자들>
망국(亡國)의 책임
- 이스라엘의 목자들 : 백성의 지도자들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에제 34,1)
나라가 망한 책임은 누군가는 져야합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책임지는 정치를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느님은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책임을 맨 먼저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묻습니다.
이스라엘 목자들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뜻대로 나라를 다스릴 목자들, 왕들을 주셨는데. 그 왕들이 목자노릇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양들을 잘 먹이고 안전하게 지켜야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의 양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 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 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에제 34,8)
하느님께 양떼를 잘 보호하도록 위임받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위하고 안전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억압, 착취 부정부패를 저질렀습니다.
망국(亡國)의 책임
- 지도자들 :착취와 억압, 부정과 부패, 은폐와 오도(誤導)
- 백성들 : 우상숭배와 악한 행실
왕이나 귀족들, 정치가들을 꾸짖고 올바로 하느님 뜻대로 다스리도록 촉구할 사람들이 예언자들이나 사제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언자들은 거짓예언자였고, 대부분의 사제들은 권력과 결탁하였습니다. 예언자들과 사제들은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윗물이 맑지 못하니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정치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올바른 목자, 지도자를 선택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오늘날의 우상은 돈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 가진 사람은 권력과 명예까지 돈으로 얻고 싶어합니다................우리가 우리 삶의 방향과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안목을 갖지 않으면 다시 힘든 삶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획 중인 운하의 길이가 530-540킬로미터쯤 된답니다. 공항 가는 길에 경인운하를 보실 수 있습니다. 18 km의 길이입니다. 98년에 시작되어 2004년에 중단된 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경제성도 없으니까 중단되었고, 환경만 파괴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자연을 파괴하는 반창조적인 일입니다. 어느 정파의 일도 이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는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의 왕직, 예언직, 사제직을 물려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언자로 자부하고 행동해야합니다. 적어도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예언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좋은 목자>
유배자들의 귀향 약속 - 희망의 메시지
나라가 망했는데 어떤 지도자를 따라야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이제 당신이 나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에제 34,11-12)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에제 34,36,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라서 끼워넣었습니당. ㅎㅎ)
이제 하느님이 직접 목자로서 흩어진 당신 양들을 불러 모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민족들에게서 데려 내오고 여러 나라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산과 시냇가에서,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에제 34,13)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불러 모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계약의 백성에게 주신 땅, 가나안 땅,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려가겠다고 하십니다. 그 곳에서 풍요로운 삶, 안전한 삶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에제키엘의 목소리는 희망의 속삭임, 용기를 주는 말이었습니다. 절망을 이길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 에제키엘이 후반기에 가진 큰 임무 중의 하나였습니다.
특권층의 책임
- 특권과 소외, 불평등 : 계층 간의 갈등, 사회적 불안유발
“ 나 이제 살진 양과 여윈 양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에제 34,20)
하느님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지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성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의 시비를 가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좀 가지고 있다고 없는 사람 멸시하고, 내가 남보다 잘났다고 특권을 누리고 못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면서 공동체 내의 불평등을 조장한다면 하느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
지도자의 잘못이 크지만 공동체 내의 불평등 등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지 못하고, 서로를 짓밟고 빼앗는 불평등, 기회를 골고루 나누지 않고 독점하려는 현상 등이 나라멸망으로 이끕니다. 성경은 바로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중략)
정치는 우리와 무관하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입니다. 귀찮게만 생각한다면 민주시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말하듯이, 살진 양와 여윈 양의 싸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살진 양 편에 있다면 여윈 양을 돌보고 함께 가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언서를 읽으면서 배워야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적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공동체 안에도 룰이 있고 권리, 의무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평등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회를 균등하게 갖기를 원하십니다.
진복팔단에서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가 오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평등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하느님 백성들의 의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이 바로 서는 세상
“너희가 약한 양들을 모조리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내고 뿔로 밀쳐 내어 밖으로 흩어버렸으니, 내가 내 양떼를 구하여 그것들이 더 이상 약탈당하지 않게 하겠다.”(34,21-22)
정의와 공정이 바로서지 않는 나라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나라입니다.
정의와 공정이 바로서지 않으면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미래의 왕국>
메시아 : 다윗가문의 후손
“나는 그들 위해 유일한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게 하겠다. 바로 나의 종 다윗이다.‘(에제 34,23)
하느님은 이제 당신이 세울 미래의 왕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미래의 왕국의 정확한 패턴은 구약에서는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신약에서 완전히 나타납니다. 미래의 왕국의 시작은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어 온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르침이 올바로 시행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 나라를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개념이 아직 안 세워져 있었습니다. (신약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장차 세워질 하느님의 나라를 다스릴 메시아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에제키엘은 메시아는 다윗가문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단순히 다윗의 핏줄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잘 받들고, 12 지파를 골고루 포용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언자들이 메시아상을 말할 때 자기들이 알고 있는 이상적인 존재인 다윗을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하느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지도자로 여겼기에, 다윗의 가문에서 나오는 지도자라면 어떤 지도자일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제후 = nasi = 판관 -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
“나 주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나의 종 다윗은 그들 가운데에서 제후가 될 것이다.”(에제 34,24)
하느님께서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나라를 다스라는 지도자인데 왜 왕이 아니라 제후라고 표현했을까요? 판관을 ‘nasi’ 라고 합나다. 제후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는 판관과 같습니다. 다윗왕은 이상적인 왕이었지만 그 이후 왕들은 다 목자답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다스릴 지도자는 왕은 왕이되, 백성을 위해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판관처럼 하느님의 일꾼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받들면서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여야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 왕직’이라고 할 때, 왕의 의미는 ‘백성을 섬기는 봉사자’ 입니다. 명령하고 군림하는 왕이 아닙니다.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요한 10.14-15)
구약에서 에제키엘이 예언한 대로,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르 10,45)
메시아는 군주제 왕들처럼 군림하고 백성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입니다.
<새로워지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구원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 거기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에제 36,22)
하느님께서 당신백성들을 약속된 땅으로 불러 모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멸망한 이스라엘을 왜 하느님은 다시 구원하실까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갑자기 철들어서가 아닙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두 민족 간의 싸움은 그 민족이 섬기는 신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쪽 민족이 섬기는 신의 힘이 더 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롱했습니다. 형편없는 신을 섬겨서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놀렸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데, 이스라엘이 멸망해 있으면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못나서 멸망한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죄 때문에 멸망한 것이다.”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미약한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의 자력으로는 회생할 수 없지만, 그들을 회생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느님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잘못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해주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서, 하느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고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분이사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새로워지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내적변화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에제 36,26-27)
부모가 매를 드는 것은 자녀를 사랑해서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의 매질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부모들은 매를 때리면서 훈계를 합니다. 부모의 훈계를 듣고 자녀들은 사랑의 매임을 압니다. 하느님도 이스라엘인들을 다시 고향으로 불러서 안식처를 제공하시겠지만, 그 전에 훈계를 하시면서 이스라엘인들의 내적변화를 촉구하십니다. 새 마음,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관습에 젖어서 내 편의대로 살아왔고, 세상에 휩쓸려 때 묻은 삶을 살았다면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내 가치관을 바꾸고, .....
하느님의 법 : 삶의 자세와 생활양식
십계명은 인간답게 살도록, 공동체의 평안을 위해 주어진 법인데, 제 욕심들을 차리다보면 어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께서 주시는 법이 삶의 자세가 되고 생활양식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되니 하느님이 영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신약에서는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백성 : 정화와 쇄신
하느님 : 새로운 계약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에제 36,28)
우리는 변화 되어야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자격을 갖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법을 어기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시나이 계약은 파기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이 정화와 쇄신을 하게 해주시고, 시나이 계약을 갱신해서 새로운 계약을 맺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구약에서 약속되어 신약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활 환시>
마른 뼈들의 골짜기
마른 뼈들 : 멸망한 이스라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처지를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에제키엘에게 마른 뼈들의 환시를 보여주십니다.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에제 37,5)
마른 뼈들은 나라가 망하고 귀양살이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뜻합니다. 살아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자기 의사표시를 할 수 있어야하는데..이스라엘의 처지는 그렇지 못합니다. 포로생활하면서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숨 -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권능
마른 뼈들에게 하느님이 숨을 불어넣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에제 37,9)
하느님이 숨을 불어넣어주신다는 것은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귀양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다시 살려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 2,7)
사람은 흙의 먼지로 빚어졌습니다. 토기에 불과한 사람에게 숨을 불어넣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숨을 받아서 다시 되살아나는 것도 하느님의 창조이다.
하느님의 창조는 일회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창조의 연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는 것도 하느님 창조작업의 연속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당신 창조사업을 이어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창조작업의 협력자가 되어야합니다. 생명을 죽이면 안됩니다...... 낙태, 살인죄는 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지만 환경을 죽이는 것은 온 인류를 죽이는 것입니다. ..............
귀양살이 해방과 귀환 : 민족 공동체의 회복
뼈들의 환시를 통해서,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살을 붙여주시고 피가 돌게 하고 숨을 불어넣어서) 살려내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살려내신다는 것은 개인적인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서와 같은 개인적 부활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흩어진 계약의 백성들을 모아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되살려 내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남북왕국의 통일>
두 개의 나무토막
- 민족 공동체의 분열 - 멸망의 시발점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에제 37,22)
이스라엘 백성이 고향땅으로 돌아갑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뉜 채 멸망하였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또 남북으로 나뉘어 싸울 것입니다.
하느님은 에제키엘에게 나무토막 두 개를 가져오라고 하시고, 그 두 나무토막을 다시 붙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두 나라로 만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솔로몬 사후 나라가 갈라지면서부터입니다. 민족 공동체의 분열은 멸망의 시발점입니다.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우리도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치루었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있습니다. 남북이 형제애, 동질성을 되찾자고 10년 동안 노력해왔습니다. 개성도 가고 백두산도 가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으로 돌아가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열은 멸망의 시발점입니다. 소수의 권력자들 때문에 언제 다시 냉전체제로 돌아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온 인류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공동체가 하나가 된 후에 그 공동체와 영원한 계약을 맺겠다고 하십니다. 통일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한 나라로 합쳐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류가 이념, 피부색깔, 사고방식, 빈부의 차이를 떠나서 형제애를 나눌 때 지구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도 통일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해야합니다. 형제가 좀 못 살면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손해 보기 싫다고, 그 꼴을 못 보겠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
평화, 안정, 번영 - 하느님의 현존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에제 37,26)
남북 이스라엘이 통일을 이루고, 형제애로 뭉쳐 있을 때 그 안에 하느님이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안에 내 장막을 치겠다.”,“그 안에 현존하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성전>
바빌론 유배 - 새로운 생명을 위한 회개와 정화의 수단
새로운 생명 - 예루살렘 성전의 하느님 현존과 축복
하느님이 에제키엘에게 새 성전을 보여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회개와 정화의 기회를 주시겠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이 떠나시니 이스라엘이 멸망했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면 다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40-48장 : 새 성전은 모든 것의 중심
40장부터 48장에서는 성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번 읽어보시면 됩니다.
환시로 본 예루살렘 성전의 넓이, 길이, 전례규정 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다.>
에제키엘의 환시
에제키엘이 다시 환시를 봅니다.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에제 43,4-5)
하느님이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오십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하느님이 계시고 안 계시고의 차이가 이렇게 큽니다.
“그때 영이 나를 들어 올려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에제 43,4-5)
하느님 나라에 세워질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이 이루어진 곳에 들어설 하느님의 장막을 말합니다.
성전 : 찬미와 감사의 제사, 삶의 진정한 중심
성전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제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성전 안에서 울려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기둥이 됩니다. 삶의 진정한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내 생명의 양식으로, 생활양식으로 삼아 사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솟아오르는 물>
하느님은 생명의 근원, 물은 그 생명력을 상징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에제 47,1)
성전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나옵니다. (에덴동산에서 강이 흘러나왔듯이,. 생명의 축복이 에덴에서부터 퍼져나간다는 뜻입니다.)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그 물이 대지를 적셔서 사해까지 흘러갑니다. 죽은 사해에 생명의 물이 흘러 온갖 생물들이 자랍니다.
하느님이 현존해계시는 곳에서 생명이 생깁니다. 생명이 있으면 삶의 보람이 생기고 행복이 생기고 온갖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에제키엘은 환시, 상징적인 언어를 통해 후대에 묵시문학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인용한 에제키엘서 내용입니다.
“그 천사는 또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묵시 22,1-2)
부활성야 미사 때에 세례서약 갱신식을 합니다. 신부님이 세례수를 축성하시고 우리에게 뿌려주십니다. 그 때 우리가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노라. 알렐루야. 그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 노래하리라. 알렐루야.‘(가톨릭 성가 67번)
성가가사는 에제키엘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땅의 재분배>
평등과 나눔의 실현
형제애 나누어야
하느님이 이스라엘 땅을 이렇게 나누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이 땅을 이스라엘의 지파에 따라 나누어 가져야 한다. 너희뿐 아니라, 자식들을 낳으면서 너희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들도, 제비를 뽑아 이 땅을 상속 재산으로 나누게 하여라. 그들을 이스라엘 본토인처럼 대해야 한다.“(에제 47,21-22)
하느님의 가르침은 한결같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약속의 땅이 자기들만의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약속의 땅에 이방민족도 함께 들어와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은 온 인류를 위해 이스라엘인들을 선택하셨음이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계시가 점점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념 지역을 떠나 평등과 나눔을 실현해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이 분명히 이방인들과 함께 나누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의 사람들이 부를 지나치게 독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고 형제가 뭉치는 공동체를 구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
YAHWEH SHAMAH :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
하느님의 현존 : 죽음 - 생명, 절망 - 희망
“이 도성의 이름은 이제부터 ‘야훼 삼마’이다.”(에제 48,35)
정의와 공정이 세워져서, 서로 평등하게 지내고 균등한 기회를 갖는 나라, 좌절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야훼 삼마”란 다시 건설될 예루살렘 도성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으로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면 죽음도 생명으로, 절망도 희망으로 변합니다. 생명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차이는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와 “하느님이 여기 안 계시다.”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멸망해가는 세상 : 새롭게 일어나는 세상
예제키엘은 멸망해가는 세상과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을 다 보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권능은 인간의 힘으로 넘볼 수 없습니다.
에제키엘은 오늘 이 시대의 우리에게 새 마음, 새 영을 갖도록 촉구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서를 배우고, 우리의 삶이 공동체를 생각하고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삶임을 깨닫고, 그런 삶을 살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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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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